12. 열아홉

by 홀연

나도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 나는 친하지 않은 H에게 친한 척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평소에는 목례하거나 수고하세요, 하고 지나쳤었는데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자 그 아이는 입을 양손으로 가리면서 이상하다는 듯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걸어갔다. 그런 반응에 무언가 내가 오버하였나 싶어 민망하기도 하고 그 애의 반응이 웃기기도 해서, 그 애에게 야, 너 열아홉이라면서?라고 외쳤다. 그 애는 계속해서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걸어갔다.

그다음 타임에 백지로 교대를 가면서 그 아이에게 다시 친한 척 인사를 건넸고 그 아이는 또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아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다음 타임에서는 나는 정문에 서서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내게 음료를 내밀었다. 그 아이였다. 내게 왜 음료수를 주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주는 거니까 기쁘게 받았다.

다음 날, 페이스북 친추가 와 있었다. 친구 추가를 받고 나자 그 아이에게 번호를 알려달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점심시간, 아이들이 말했다. H 안 와서 어떡해? H가 언니 좋아하는데?

나는 그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H와 친한 I가 내 번호를 알려줄까?라고 하자 H는 자기의 능력이 될 때 물어볼 거라면서 그랬다고 한다. 내가 백지에서 교대를 할 때 인사해주자 손을 흔들며 기쁨을 표시했다고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아이가 교대를 오자 손으로 엑스를 치며 실망한 표정을 보였다고 한다. 멘트를 하는 내 목소리에 목소리도 아름답다고 말했다고 한다.

동갑인 친구에게도 H가 나를 좋아한다며 귀엽다며 웃었다. 그러자 친구는 전날 H가 자신에게 내가 무슨 음료수를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눈치챘다며 말했다. 어느 날은 저 사람 누구냐고, 예쁘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얼마 후에 그만둔다는 말에 거의 울듯한 표정을 지었노라고도 했다. 흩어져있던 많은 이야기들을 나는 계속해서 주워 들었다. 얼마 전까지 얼굴만 알던 그 아이가 무언가 다르게 보였다.

그런 말들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열아홉, 95년생, 4살 차이의 애기였다. 그 애가 절대 남자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애기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그렇게 좋아해 주는 게 신기하고 기쁘게 느껴졌다.

휴무인 그 아이에게 내일 오라고 하자 진짜로 그 아이가 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아이는 코너를 돌아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부끄러운지 내 눈도 못 마주치는 그 아이가 귀여웠다. 10대 때 뻔한 로맨스도 없던 내게 신선한 기분이었다. 20대 중반 오빠들의 능글거림이 아닌 그 순수함이 귀여웠다. 그 아이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땐 못해도 21살은 되어 보였는데, 교복을 입으니 정말 어려 보였다. 아청 아청. 나는 친구들에게 장난으로 내뱉었던 그 말이 떠올랐다. 아청 아청.

십 분여 되는 시간 동안 나를 보며 부끄러워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그 아이를 놀리기도 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카톡이 아닌 실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이 때문일까, 나는 무척 그 아이가 편했다.

그 아이는 내가 일하는 곳까지 가며 내게 자신의 번호가 있느냐, 물었다. 나는 폰을 내밀었고 그 아이는 자기가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려다 그만두고 내게 폰을 건네주었다. 내가 그냥 이름 석자로 저장하자 그 아이는 자기는 엄청 길게 저장해놓았는데 그게 뭐냐고 그랬다. 멀리서 보여준 이름은 참 길었다. 뭐냐고, 보자고, 하는 내 말에 그 애는 계속 폰을 숨겼다.

그러다 그 아이는 저장된 이름 보고 아무 반응도 하지 말고 그냥 가라며 폰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뒤를 돌아 교대를 하러 갔다. 민망함, 부끄러움, 우스움, 당황스러움 등이 교차했다.

교대하고 뒤를 돌아보자 그 아이는 없었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들었다. 그 아이의 카톡에는 내 이름이 OO누나 좋아 조아조아..... 와 즐겨 찾는 친구로 유일하게 등록되어있었다. 잠시나마 나는 4살 어린아이와의 연애를 상상해보았다. 내 머릿속에 이 말이 떠올랐다. 아청 아청. 나는 웃음을 지었다. /1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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