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꼭 돈을 벌어야 했다. 그 돈은 많을수록 좋았다. 나는 2개월 동안 내가 벌 수 있는 최대한의 돈을 벌어야 했다.
우선 방학기간만 하는 취업연수생에 신청해놓았다. 100% 전산 추첨이라고 했다. 왠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이 발표난 이후에 아르바이트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취업연수생은 총 100명을 뽑았지만, 지원한 사람은 1800명이 넘었다. 나는 당연스럽게도 떨어졌다.
알바 구직 사이트를 하루 종일 바라보는 일이 시작되었다. 괜찮아 보이는 일자리에 면접을 보러 다녔다. 얼마냐 일할 거냐는 질문에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하려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웬만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고 싶다는 내 신념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 첫 면접에서 나는 2개월만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면접을 보는 이는 2개월은 너무 짧다고 말했다. 나에겐 긴 시간인 2개월이라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짧았다. 나는 그 다음 면접에서 2개월만 일할 계획이었지만 6개월은 일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6개월은 너무 짧다고 말했다. 나는 연락을 기다렸지만,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백화점 안내데스크에 이력서를 넣었다. 아르바이트인 줄 알았는데 백화점 파견업체에 취업하는 것이었다.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 면접이 아닌 입사 면접 같은 면접을 보았다. 1년은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거짓말에 더욱 괴로워졌다.
알바 구직 사이트 두개에 이력서를 올려놓았다. 그래도 그곳까지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아 2개월만 일할 계획이라고 써놓았다. 하지만 분명히 2개월만 일을 한다고 써놓았지만 내게 걸려온 전화들은 모두 장기로 일할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콜센터에서도, 레스토랑에서도 전화가 왔지만 2개월만 일한다는 말에 모두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바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문자가 여러 차례 왔다. 시급도 좋고 일도 편하다며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구직 사이트에 올려놓은 이력서를 보고 전화가 왔다. 백화점 향수 매장 직원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향수 매장에서 전화가 온 것이 아니라 파견업체에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나는 2개월만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직원은 괜찮다며 그것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고 말했다. 나는 향수를 뿌리지도, 좋아하지도, 잘 알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직원은 괜찮다며 면접 볼 때 거짓말을 하고, 일을 하며 차차 배우면 된다고 말했다. 난 왠지 찝찝했지만 그러겠다고 말했다. 직원은 내 이력서를 고쳐서 보냈다고 말했다. 그가 고쳐준 내 이력서에는 휴학이 아닌, 취업계를 낸 것이라고 되어있었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무조건 거짓말을 해야 했다. 어떤 식으로 거짓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향수 매장에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하자 여직원은 사람을 분석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향수를 잘 아느냐는 물음에 나는 준비했던 거짓말을 잊어버리고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력서를 바라보던 직원은 왜 4년제 대학생이 취업준비를 해서 관리자로 오지 않고 백화점 매장에서 막내 직원으로 들어오기를 희망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황했다. 4년 제이지만 지방대학이고, 내 객관적인 스펙도 좋지 않아 이렇게 하다간 빨리 취업을 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요. 차라리 실무를 배운 다음에 차근차근히 올라갈 생각이에요. 바보 같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던 그 말이 사실은 진짜인지도 몰랐다. 그 말은 진짜면 안되었지만 진짜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진한 향수 향기에 어지러웠다. 새하얀 백화점을 나오면서 초라함을 느꼈다.
청년백수가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르바이트 사이트에는 일을 구하는 곳이 무척 많았지만 조건이 부족한 나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왠지 이 느낌을 졸업 후에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나는 두려워졌다. 그만 두고 싶었다. 일을 구하는 일을 그만 두고 싶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일을 해야 했다.
나는 계속 알바 구직 사이트를 보고 또 보았다. 그러다 백화점 주차안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을 보았다. 단기 알바도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월급도 적혀있었다. 꽤 높은 액수였다. 하지만 왠지 겁이 났다. 무척 먼 일처럼 느껴졌다. 상상도 가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을 해야 했다. 아니, 돈을 벌어야 했다. 나는 돈이 필요했다. 많은 돈이. 나는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지하 2층 관리실로 오세요. 빨리 오실수록 좋아요. 나는 그 곳으로 향했다. 긴 면접도 없이, 바로 내일 나오라는 말을 들었다.
나 내일부터 일해. 허무하다.
지상으로 나오면서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이주 동안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닌 일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인생은 그렇게,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나는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새하얀 백화점을 지나, 호텔 아래에 있는 검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