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초라

by 홀연

직원이 자동차 문을 열자, 높은 하이힐을 신은 긴 다리가 그 밖으로 내려졌다. 곧이어 늘씬한 여자가 운전석에서 나왔다. 그녀의 갈색 생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나는 눈을 떨구었다. 기본 펌프스를 신은 내 발이, 퉁퉁 불어있는 내 발이 보였다.


지하주차장에서만 일하는 줄 알았지만, 가는 곳은 총 세 군데였다. 백화점 지상 주차장(줄여서 백지), 2층 정문, 2층 검품장 앞. 하루 5번 근무를 들어가고 5번 쉰다. 그 5번 동안 교대로 세 군데를 돌아 들어간다. 일을 할수록 선호하는 시간대와 선호하는 곳이 생겨났다. 어느 날에 어디가 일하기 편한지, 언제 바쁜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을 시작한 지 이틀이 되던 날, 나는 혼자 일을 하게 되었다. 전날 하루 종일 발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던 스무 살 동생은 결국 출근을 하지 않았다. 역시 스무 살은 어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도 이 정도 월급이 아니라면 출근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뻐근하고, 발은 계속 아팠다. 나는 계단을 올라 백지로 올라갔다.

백화점의 VIP 개념으로 주차장에도 MVG라는 것이 있었다. 1년 이상 일정 금액 이상을 백화점에서 소비하면 전용 주차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고, 주차요금을 무료로 해주고, 일정 등급이 되면 발렛도 무료로 해주고 있었다. 백지의 부스에 서 있을 때 관광버스가 가리고 있지 않으면 MVG라운지의 사람들이 일하는 것이 보였다. 다른 파트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한 자동차가 그 앞에 멈추었다. 직원이 자동차 문을 열자, 높은 하이힐을 신은 긴 다리가 자동차 문 밖에 내려졌다. 갈색 긴 생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나는 눈을 떨구었다. 기본 펌프스를 신고 부어있는 내 발이 보였다. MVG 등급이 되기 위한 최소 요건이 백화점에서 1년에 1500만 원을 소비하는 것이었다. 발렛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더 많이 소비해야 할 것이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이 곳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저 여자는 이 곳에서 내 월급보다 많은 돈을 소비하는구나.


우리들은 5층 휴게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말했다. 나도 몇 년 뒤에는 자동차에 MVG마크를 달고 이 곳을 들어와 발렛을 맡기겠노라고. 예전에 일했던 곳이지, 하며 웃겠노라고. 어떻게 그렇게 돈을 벌 것인지,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 것인지 계획 없이 우리는 몽상을 말했다. 정말 우리가 10년 안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앞에서는 나도 과장된 허풍을 쏟아내었다. 그리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면 버틸 수 없음을 알았다. 헛된 몽상이라도 우리는 붙잡아야 했다. 그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의 현실 속의 우리가 너무도 초라함을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자주 초라한 감정에 휩싸였다. 자동차 안의 고객들이 안내를 하고 있는 나를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 빤히 바라볼 때, 내가 하는 수신호를 고객들이 자동차 안에서 따라 하며 웃을 때, 나와 또래인 여자가 MVG마크를 단 자동차를 타고 지나갈 때, 마이크를 통해 나오는 내 목소리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때,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퉁퉁 불어있는 발과 발목을 바라볼 때, … 초반에 매 순간 나는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초라하게 느껴진 순간은, 내 위치가 '그래도' 4년제 대학생이던 신분에서 이 정도 일을 하는 사람으로 추락했다고 느꼈을 때이다.


한 친구에게 이러 이러한 일을 한다고 하자 그 친구는 말했다. 그래, 직업의 귀천은 없어. 세상의 모든 일은 소중한 일이야. 뻔하고 당연한 그 말에 나는 왠지 울컥했다. 난 평생 이 일을 할 생각 없으니까 그런 말하지 않아도 돼. 도덕 수행평가의 모범 정답 같던 친구의 말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이미 지나간 날의 짧은 대화였음에도 이 대화가 내 머리 속에서 잊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나 스스로가 내 위치가 추락했다고 인지했기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전의 23년의 내 삶과는 무척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리 좋지 않은 나의 학벌이 이 곳에서는 고학력이 되곤 했으며 (한 아이는 내가 실수로 어떤 단어를 잘못 말하자 이렇게 말했다. 4년제 다니면서 그것도 몰라? 참 낯선 말이었다.), 이 무리에서 내가 유일하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되곤 했으며, 내가 어울리던 사람들 속에서는 잘 듣지 않던 비속어를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들이 즐비했으며,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이상한 은어를 새로 알게 되곤 했다. 잡초까지는 아니어도 온실 속의 화초처럼은 키워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내 유년시절이 온실 속의 화초의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곤 했다.

두려웠다. 나는 평소에 타인의 행동거지나 말투, 생각 등이 잘 옮는 편이었다. 내가 조심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타인을 닮곤 했다. 그런 내가 싫지만 방심하는 순간 그리되곤 했다. 매일 듣는 것이 그런 언어들이고, 그런 생각들이라면 나도 모르게 그런 것들이 옮게 되지 않을까? 나는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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