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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May 10. 2020

평범한 A에서 특별한 나로

나의 시작이 바꾼 것

 수업은 끝날 듯 끝나지 않았고, 나는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봤다. 교수님이 수업을 마치자 나는 재빠르게 교실을 뛰어나갔다. 경영대에서 정문까지, 복도에 가득 찬 학생들을 지나 셔틀버스를 향해 뛰었다. 다행히 버스는 떠나지 않았다. 나는 버스에 올라탄 뒤 숨을 고르며 창밖을 보았다. 봄이 온 듯하다가 매서운 돌풍이 부는 4월 초, 정문 앞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햇볕이 따스하게 부서졌다. 나는 언니의 벚꽃색 니트를 입었는데, 그 니트를 입으면 유난히 더욱 봄 같았다.    


 나는 도전과 새로운 시작을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안정과 평온함을 바라고, 내 삶이 평범하기를 원한다. 어제와 같은 내일이 오기를 바란다. ‘평범한’ 직장을 얻어 ‘평균적인’ 사람을 만나 ‘평탄한’ 결혼생활을 ‘무탈하게’ 하고, ‘평균’ 수명에 맞게 살다가 ‘평범한’ 사유로 죽고 싶었다. 

 그런 내가 복수전공을 선택한 것은 나도 알 수 없는 선택이었다. 3학년이 시작되기 전,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것인지 나는 복수전공을 신청했다. 복수전공 신청 절차는 간단했다. 기간에 맞춰 원하는 과를 2지망까지 선택해서 신청하기를 선택하면 그만이었다. 늘 평온했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나는 많은 학생이 복수전공을 한다는 경영학과생이었고, 문예창작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했다. 전 경영학과생이고, 문예창작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면 보통은 반대로 하지 않느냐며 나를 신기해했다.

 성적에 맞춰 온 경영학과는 정말 재미없었다. 학과 생활도, 수업도 내겐 삭막하게 느껴졌다. 어떤 교수님은 1학년 때부터 취업준비를 권하며, 가고 싶은 기업 세 군데 기업정보를 조사하는 것을 과제로 내기도 했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캠퍼스는 특이해서, 경영대 건물에서 문예창작학과가 있는 인문대까지 가려면 셔틀버스를 타고 20분은 가야 했다. 나는 늘 그 시간이 좋았다. 셔틀버스를 타고 차창 밖의 풍경이 번화가에서 시장으로, 시장에서 주택가로, 다시 번화가에서 학교 앞으로 바뀌는 그 모든 풍경에 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버스의 창문을 살짝 열어놓으면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내 머리카락이 흩날렸고, 햇빛이 찬찬히 부서지는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 수업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이제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기억나는 건 매번 혼자서도 첫 번째 줄에 앉았다는 것, 교재에 색색으로 필기를 하기를 좋아했다는 것,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세련된 경영대 건물보다 낡고 수세식 변기가 있는 인문대 건물을 더 좋아했다는 것들이다.    


 인문대 건물에서 정문으로 가려면 108계단이라 불리는 긴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수업을 다 마친 이른 오후, 따사한 햇볕을 만끽하며 여유롭게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갑작스럽게 바람이 불며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내 앞을 지나가던 남학생들은 들뜬 목소리로 벚꽃을 잡기 위해 방방 뛰었다. 그런 행동 때문인지 어쩐지, 그들의 얼굴이 꽤 앳되어 보였다. 나는 무심코 손을 내밀었고, 벚꽃은 변변히 나를 비껴갔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나는 벚꽃잎을 두 장 잡았다. 나는 다이어리에 소중히 그 벚꽃잎을 끼워두었다. 23살, 대학교 4학년의 봄, 경영학과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집어 들었던 취업정보지는 가방에서 조용히 잠자코 있었고, 나는 마담 보바리니 사무엘 베케트니 하는 혀가 말리는 낯선 이름들을 생각하며 떨어지는 벚꽃잎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 같던 그 오래된 강의실과 강의실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좋았다. 어느 날은 꿈같은 오전 시간을 보내다 셔틀버스를 타고 신축인 경영대에 도착하면, 오후에는 HRD라든지 세무회계라든지- 나는 평생을 써먹지 못할 경영자를 위한 경영학을 배우며, 회사의 부품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정말 다른 세계였다.

 내게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쓴 소설이 40명이 넘는 학우들의 글 중 6개만 뽑히는 대표작으로 뽑혔을 때 느꼈던 설렘이, 익명으로 낸 과제에서 교수님이 처음으로 내 글을 읽어주었을 때 벅찼던 마음이, 매주 시를 쓰고 교수님과 면담을 할 때 다정히 시를 평가해주시던 그 격려가 나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복수전공을 하던 2년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고 행복했다. 같은 수업의 분반이 8개나 되던 경영학과에서 나는 항상 이방인 같았고, 문예창작학과가 나의 것 같았다. 자소서를 쓰기 시작하며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소설인데 내가 써야 하는 것은 자소설이구나 하며 깊은 절망을 했다.

 나는 결국 전공에 맞춰 평범한 사무직으로 입사를 했다. 졸업하고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가, 마음이 공허해졌을 때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여전히 나는 평범하고 평균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인생에 큰 굴곡이 없고 아픔이 없기를 바라며 평범함을 꿈꾼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쓸 때면 나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 특별한 사람이 된다.   

  

 어떤 시작은 많은 것을 바꾼다. 나의 시작은 평범한 직장인이며 유부녀 A였을 나를 ‘특별하고 유일한 나’로 바꾸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선물받았던, 내가 쓴 글귀를 적은 연필.
23살 봄, 인문대 앞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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