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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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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Sep 27. 2020

15~20일_단유

"단유 하는 게 어때?" 그 말이 구원 같았다.

15일            


 출산 15일째, 출산휴가 31일째, 일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조리원에서.    


 아이는 내 품에서 울고 있고, 나는 아이가 왜 우는지 모른다. 배고파서 우는 건가 싶어 젖을 물려봐도 아이는 자꾸 내뱉고, 시뻘게진 얼굴로 온갖 인상을 쓰며 울어댄다. 수유실 안의 다른 산모들은 평화롭다. 모두들 행복해 보이고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왜 나만 이렇게 먹이는 게 어려울까. 이제 조리원 퇴소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집에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만 한다. 아이의 생존을 책임져야 한다는 게 두렵게만 느껴졌다.    


 아이가 깨었을 때 수유실로 가면, 아이는 커다랗게 눈을 뜨고 세상에서 가장 낯선 것을 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래, 내가 네 엄마야,라고 말해봐도 아이는  이를 보는 표정으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잠시 나를 바라보다 흥미를 잃었는지 몸을 비틀면서 잘 가누지 못하는 고개를 위로 돌려 위를 바라본다. 아이의 얼굴은 복숭아빛이었다가, 잘 익은 홍시의 색이 되었다가, 다시 복숭앗빛으로 돌아오길 반복한다. 젖은 그냥 물리면 아이가 먹는 건 줄 알았는데, 아이는 젖을 물었다가 내뱉기만 한다. 힘겹게 물리기에 성공하면 잠시 먹다 잠들기도 한다. 내가 공부한 이론은 아무 소용이 없고, 아이의 마음을 모르겠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힘들어서 그렇겠지? 적응되면 괜찮을 거야. 마인드컨트롤을 해보지만 매번 수유시간마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니 지친다.

 아이를 안아 달래보지만, 아이가 목을 움직이다 얼굴을 쾅 하고 내 어깨에 박아버린다. 내가 하는 행동은 왜 이렇게 모든 게 다 어색하고 어설픈 걸까. 아이의 등을 토닥거리자 아이는 진정된 듯 새근거리다 잠들어버린다. 깨워서라도 먹여야 한다던데, 다시 깰까 싶어서 수유쿠션 위에 아이를 내려보지만 아이는 이미 깊게 잠들었다. 아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오른쪽 어깨가 저려온다. 배도 쿡쿡 아파지고 피곤함과 배고픔이 몰려온다. 이번 수유시간도 직수는 실패다. 아이는 잠만 자는데, 신생아실에 아이를 넘겨주고 방으로 돌아갈까 생각을 하다가 수유실의 다른 엄마들을 바라보니 모두가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아기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하고, 지치는 걸까. 나는 모성애가 부족한 걸까. 정말 일하는 게 더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아직 본격 육아를 하기도 전인데 이런 약한 생각을 하다니, 하며 내게 실망한다. 충분히 각오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약한 생각이 드는 걸까.    


 십분 정도 수유를 하려고 애쓰다가, 이내 아이는 잠들고, 그러면 나는 잠든 아이를 무기력하게 삼십여 분 바라보았다. 사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얼른 내 방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배는 고프고, 피곤하기만 하고, 자는 아이의 얼굴은 예쁘지만 나도 자고 싶은 생각만 든다. 간호사가 수유실로 들어오면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아이를 데려가달라고 요청했다. 잠든 아이를 간호사에게 넘겨주고 방으로 돌아오면, 식사가 방에 배달되어 있다. 밥을 먹으려다가, 단단해진 가슴이 불편함을 느끼고 유축을 먼저 한다. 유축을 하고 있으면 정말 젖소가 된 기분이다. 내 존재가치가 수유를 하는 데만 있는 것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해진다. 이십여 분간 유축을 하고, 밥을 먹고, 누워 잠을 청한다.    


 “따르릉!”

 얼마 잔 것 같지 않은데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수유하러 오세요.”

 벌써 다음 수유시간이다. 나는 후다닥 짐을 챙겨서 다시 수유실로 내려가고, 다시 아이에게 젖을 물리려 애를 쓰다가, 잠든 아이의 얼굴만 한참 바라본 뒤, 방으로 올라오길 반복했다.      

  

18일_퇴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퇴소를 했다. 조리원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거의 아무것도 배우질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모자동실이 금지된 터라 수유시간에만 아이를 볼 수 있었고, 때문에 나는 기저귀를 갈아보지도, 속싸개를 해보지도 못했다. 소아과에서 진찰을 받고 속싸개를 하라는 간호사의 말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언니가 집에 와서 마음이 편해졌다가, 언니가 돌아간 후로는 남편과 정신없이 아이를 돌봤다. 정신없이 밤이 왔다. 잠든 아이를 아기 침대에 눕힌 뒤 나도 매트리스 옆에 누웠다. 피곤한데 잠이 오질 않는다. 아이가 조용하니 불안해져서 몇 번이고 일어나서 아이를 확인했다. 아이는 새근새근 잘도 자고 있다.

 “ㅇㅇ이가 죽을까 봐 무서워.”

 정말로 아이에게 큰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던, 조리원 퇴소했던 날. 아이는 너무나 작고 연약해서 조금만 잘못해도 부서져버릴 것만 같았다.        


20일_단유를 결심하다.        

 남편은 조리원에서부터 단유를 권했다. 나는 출산 전에는 해보는 데로 모유를 먹여보고 안되면 분유를 먹이자고 생각했고, 모유를 못 먹여도 죄책감을 갖지 말자고 결심했는데, 막상 단유를 생각해보니 너무 빨리 단유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모유가 좋다고 많은 육아서에서, 모든 사람들이 말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넘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은 이론과 달랐다. ‘아기가 젖을 먹는 것은 본능’이라길래 그냥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정말 어려웠다. 병원과 조리원에 있던 17일 동안 제대로 먹여본 적은 두세 번에 불과했다. 유축을 하고 나면 내 뼈와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고, 하루 세 끼와 세 번의 간식을 먹어도 살이 쭉쭉 빠졌다. 자도 자도 피곤했고, 유축할 때마다 지루하고 우울했다.    


 집에 돌아오니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 아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제대로 먹지도 않았다. 젖병으로 주면 너무나도 잘 먹고 먹는 시간도 잘 지키는데, 모유를 주려고 하면 먹지도 않고 먹는 시간도 엉망이어서 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잘 먹이고 싶어서 보호기도 사보았고, 관련 동영상도 많이 보았다.

 “단유 하는 게 어때?”

 남편의 말이 슬프기도 했지만, 구원 같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교감의 시간이 좋았다. 나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줄 수 있어 좋았다. 단유를 하기로 마음먹은 뒤, 분유를 줄 때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이에게 밥을 줄 때나, 아이를 안을 때 계속 가슴이 찡하니 아파지며 젖이 도는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더는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모유를 먹이려 애쓰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분유를 먹이면서 보인다. 아이의 복숭앗빛이 도는 뺨과 오동통한 턱살, 낮고 작은 코와 넓고 동그란 이마, 연한 눈썹과 그 아래의 커다란 눈, 별을 박아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그 눈동자, 어릴 적 나를 닮은 아이의 모습이, 모유 수유를 포기하자 그제야 하나하나 자세히 보인다. 그래, 스트레스를 받은 모유를 스트레스 안 받고 분유 주는 게 훨씬 나아. 아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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