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가 나를 바라본다. B는 내 쪽을 보며 장난스러운 행동을 취한다. 아주 먼 거리에 있는 B이지만 B의 행동에 나는 웃는다.
노을이 진다. 구름이 빠르게 흘러간다.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함께 보고 싶었던 A가 아닌 B가 그 노을이 흘러가는 풍경에 속해있다. B는 노을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어느새 내 시선 끝에 B가 속해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빠르게 흐르는 구름처럼 내 생각도 빠르게 흐른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흔들리고 싶지 않다고,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A가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 B는 내 눈 앞을 맴돈다.
나 자신도 내 행동에 놀란다. B가 나를 못 보고 내 앞을 걸어가고 있자, 괜히 구두 소리를 크게 내서 B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B가 나를 발견하고 내게 장난을 치면 나는 몰랐다는 듯이 웃는다. B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백지에 올라가면 기뻐한다. B와 같은 시간대에 일하기를 바란다. B와 연락을 한다고 A의 연락을 씹는다. B와 A에게 괜히 같은 말을 보내서 답을 비교한다.
이런 행동들은 내가 정말 싫어하던 행동임을 알면서도 나는 그리 행동한다. 나쁠 것 뭐가 있냐고, 나는 그저 B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것일 뿐이라고, B는 남자가 아닌 동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까지만 이렇게 행동해야지, 그때까지만 이렇게 행동해야지 하고 유예해본다.
내가 혹시 B를?
나를 자책하다가 상황을 이렇게 만든 A가 나쁘다고 탓해본다.
내 시선 끝에 B가 있다. 엉뚱한 생각이 자꾸 치민다. 나는 그 생각을 잊으려 멘트를 외우고 안내에 열중하려 하지만 또다시 그 생각이 밀려든다. 내가 혹시?
어디서 읽은 글이 떠오른다.
"마음이 깊어지는 건 그 사람이 옆에 있을 때가 아니라 나홀로 떨어져 그 사람을 생각할 때다. 혼자 궁상맞게 앉아 같이 했던 모든 일들을 예쁘게 포장하며 마음을 키워간다."
당황스럽다. 분명 이렇게 단시간에 좋아진 것은 A 단 한 명이라고, A는 완벽한 내 이상형이라고, A 같은 사람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마음으로-, 혹은 더 깊어진 마음으로 그를 좋아한다, 고 생각했던 것이 며칠 전인데 순식간에 마음이 변하고 말았다.
만일 A가 아닌 B와 함께였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는 내가 싫다.
B는 신기할 정도로 A와 다르다. 철없고, 거칠고, 다혈질이고, 무계획적이며, 미래가 아닌 현실의 유희에 빠져 살며, 술 담배를 즐기며, 거친 언어를 썼다. 하지만 귀엽고, 애교 있고, 조잘거리며, 다정했다. 분명 내가 싫어하는 요건을 많이 갖췄음에도 나는 계속 B를 생각하게 된다. 일주일 전에는 내 인생에 실오라기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던 B가, 말을 나눈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는 B가 이렇게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에 당혹스럽다.
담배를 피우는 B 옆에 앉아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본다. 사람이란 얼마나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행동하게 되는 걸까? 앞으로 나는 또 얼마나 많이 내 신념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게 될까? 짙던 담배 연기가 점점 흩어져 사라진다.
* * *
옅은 바람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괜스레 죄책감이 드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는 일일까?
어쩌면 둘 다 놓아버리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