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당장 내일 볼 것처럼,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정말 내일 오면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했지만, 이제는 A가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래, 오지 않아야지. 보지 말아야지.
A에게서 계속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초라해졌다. 의무실의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점점 더 머리가 아파왔다.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웬만한 슬픈 일에는 울지 않는 나였다.
잠은 오지 않고 눈물만 계속 흐르는 채로 한 시간여를 누워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 관리실로 갔다. 나는 조퇴를 했다. 병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옷을 입고 나는 멀쩡히 잘 걸어 죽을 사러 갔다. 나는 아픈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멀쩡하게 죽집을 찾아보고 메뉴를 고심하고 주문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한의원에도 들러 침과 물리치료를 받았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자려고 누운 후부터 나는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연락 없는 A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울다 잠이 들었고, 깨어나 폰을 확인하고 다시 울다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햇볕 한점 들지 않는 집에서 한참을 그러다 나는 내 자신이 추락한 것을 깨달았다. 나는 A와 사귀는 것에 의미가 없어졌다. 아홉 개가 장점이라도 한 개가 단점이라면, 그 단점이 다른 장점을 상쇄시킬 만큼 치명적이라면, 나는 그의 손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어떠한 계기가 없었다. 지금이 그 기회였다.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나임을 잘 알기에 나는 A에게 무엇이라고 말할지 따박따박 정리해서 써놓았다. 그런 글을 쓰는 내 스스로가 초라해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초라함은 오늘까지라고, 나는 울며 생각했다.
누워있는 것에 지쳐 좁은 부엌에 쪼그려 앉아있는데 A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는 못 본 척 눌러보지 않았다. 곧 A에게 전화가 왔다. 내 컬러링은 김예림의 컬러링이었다. 너무나도 경쾌한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멜로디는 경쾌하나 잘 들어보면 가사는 이별을 앞둔 여자의 마음이 들어간 노래였다. 나는 소리를 껐다.
A에게서 몇 번의 전화가 더 왔다. 받아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고민하다 전화를 받았다. 언니는 언제 오냐는 말에 나는 언니가 오늘 휴가를 떠났다고 말했다. A는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나는 오지 말라고 말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A가 오기로 하고, 내게는 병원에 다녀오라 말했다.
병원에 갔더니 이미 병원은 문을 닫아있었다. 몇 개의 병원이 다 문을 닫은 것을 확인하고 나는 약국에서 약을 샀다. A가 도착했을 때 병원에 가지 못했다고 하자 A는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나는 싫다고 했지만 병은 참으면 안된다는 그의 말에 응급실로 향했다.
자주 골골거리지만 큰 병은 없어서 응급실도 처음이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링거를 맞고, 여러 검사를 하자 정말 크게 아픈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해졌다. 누워있는 내 곁에서 A가 나를 토닥거려주었다. 걱정할까 봐 가족들에게도 내가 아파서 조퇴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었다. 누군가 내 곁에서 병간호를 해준다는 것이 낯설었다. 나는 헤어짐을 생각하는데 A는 먼 거리에서 와 있어준다는 것이 미안했다. 나는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A는 왜 우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응급실 옆의 침대에 어린 여자아이가 화상을 입어서 울며 들어왔다. 아프다고 칭얼거리는 모습조차 예뻤다. 동생이 살짝 건드린 것에도 크게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에게 엄마는 괜찮다며 안아주고 토닥거려주었다. 내 손도 잡아주지 않는 A가 미웠다.
두세 시간 정도 링거를 맞다가 집으로 가 A가 사온 죽을 먹었다. 함께 앉아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다 이런 대사가 나왔다.
"어떻게 말할지 헷갈릴때는 진실을 말하는 게 답이라구. 그게 옳다고 생각해."
그 대사에 A는 나지막이 그래,라고 말했다. 곧이어 A는 내게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리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지향점이 다르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나와 A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텔레비전을 끄고 막차시간이 한참 지나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명 슬프고 심각한 순간이었는데 어쩌다 둘이 함께 빵 터졌다. 그 후로 유쾌해졌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울면서 웃었다.
A는 내가 자는 것을 보고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A가 가기 전에는 잠들 수 없음을 알았다. A가 내게 누우라고 말했고 나는 누워서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A가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다정한 손길, 다정한 눈빛, 다정한 태도,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분명히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올까?라는 그의 말에 나는 망설였다. 너는 네가 원하는 바를 확실히 말하지 않는 것을 고치라고 말했다. 너는 남들을 배려한다고 그렇게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고. 나는 그의 말에 내일 오라고 말했다.
A가 5분 뒤에 간다고 말했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안아주고 가라고. 서서. 나는 A에게 안기는 것이 좋았다. 처음 안겼을 때 넓고 포근했던 품이 작아진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누웠고, A는 내게 씻으러 가라 했지만 나는 그럼 더 슬플 것 같아 누워 A가 가는 모습을 보았다. 집의 불이 꺼지고 신발장의 불이 켜졌다. A가 문을 닫았다가 열어서 나를 다시 보고 문을 닫았다.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신발장의 불이 꺼졌다. 나는 완전한 어둠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