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함의 기록 : 불안해서 사모은 스펙들

열심히 살았는데 쓸말이 없어요.

by Heidi Buildup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우리는 흔히 이 서류들을 정의할 때, 지원자의 성장 과정과 일에 임하는 태도, 그리고 왜 하필 이 직무와 이 산업, 이 회사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진정성 있게 알리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교과서적인 정의는 명쾌하다. 하지만 이것을 막상 글로 표현해 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내 인생의 조각 조각들을 정리된 언어로, 그것도 평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날카로운 논리로 바꿔야 하니까...!


그런데 이 막막함은 단순히 문장을 구성하는 작문의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더 깊고 묘한 심리적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 두려움은 취업이라는 시장에서 나를 증명하고 포장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맞닿아 있다.

취업이라는 시장에서 기업에게 "나는 당신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라고

나를 최적화해 어필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참 고약하다.

나의 경험을 조금이라도 부풀리면 금방이라도 들통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고..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만 쓰자니 다른 지원자들에게 밀려날 것 같은 불안감이 동시에 든다.

과시와 겸손, 그 애매한 줄타기 속에서 구직자들은 첫 줄을 떼기도 전에 지쳐버리는 것이다.



바로 엊그제 컨설팅을 진행했던 한 친구의 말이 기억난다.

"선생님이랑 대화할때는 말로 할 때는 술술 나오는데, 막상 이걸 집에가서 자기소개서로 쓰려고 하니

너무 막막해요. 무슨 말을 써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빈 화면 커서 앞에서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열심히 살았는데, 쓸 말이 없다'는 그 허탈함.

그건 아마 대부분의 구직자가 겪는 딜레마일 것이다. 우선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자기소개서의 모든 질문이 향하는 답은 결국 하나다.

나와 직무, 그리고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의 접점을 찾는 것.



이 단순한 공식을 요즘 취업 트렌드에 비추어 보면 꽤 흥미로운 현상이 보인다.

과거에는 그저 자격증 개수나 학점 같은 정량적인 스펙이 전부인 줄 알았다. 물론 공기업 같은 곳은 여전히 필수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기본 조건이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분명 다르다.

이제는 구직자들도 단순한 자격증 나열보다는 실제 프로젝트 경험을 확보하려고 애쓴다.

그래서인지 소위 일경험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들이 늘었다.

직무 부트캠프 같은 실무 교육 과정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인기를 끄는 것도 바로 이런 트렌드의 방증일 테다. 경험이 중요해진 시대 이건 분명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다. 자격증 하나보다도 이런 경험 자체가 더 도움이 되는것 맞다. 이런한 경험들에서 본인의 역할, 성과들이 모여 자기소개서 소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이들을 지켜보다 보면 가끔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물론 배우려는 노력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진짜 아이들이 무슨 교육만 수집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치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듯 '교육 쇼핑', '경험 쇼핑'을 하듯이 말이다.

앞서 말한 그 '심리적 장벽'과 불안감 때문일까?

당장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나를 증명하고 판매하는 것이 두려워 교육 수강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도피하는 것은 아닐까.

직무 경험을 쌓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할 교육이

오히려 취업을 미루기 위한 핑계가 되어버린 주객전도의 상황.

이것이 요즘 채용 시장의 씁쓸한 부작용 같다.

경험은 강의실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교육 수료증이 하나 더 늘어난다고 해서 자소서의 심리적 장벽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진짜 '나의 이야기'는 교육을 듣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고민했고 어떻게 부딪혔는지에 대한 치열한 흔적에서 나온다. 그러니 부디 교육만 쇼핑하듯 모으지 않기를. 이미 당신은 충분히 열심히 살았다. 필요한 건 새로운 스펙 한 줄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경험 속에서 '직무'와의 접점을 찾아내는 예리한 시선일 뿐이다.

그 접점을 발견하는 순간! 막막했던 자기소개서는 비로소 나의 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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