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 앞에서 작아지는 진짜 이유

직무의 본질을 모르면 금광도 돌멩이로 보인다.

by Heidi Buildup

깜빡이는 커서가 심장 박동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가장 열정적으로 도전했던 경험을 서술하시오.’ ‘직무와 관련된 본인의 차별화된 강점은 무엇입니까?’

질문은 명확한데 머릿속은 하얘집니다. 대학 생활과 지난 사회생활을 돌이켜보면 분명 치열하게 산 것 같은데, 막상 빈칸을 채우려니 내 경험들은 너무나 소소하고 초라해 보입니다. 남들은 해외 인턴에, 공모전 대상에, 거창한 프로젝트 경험이 수두룩한 것 같은데 내가 가진 거라곤 동네 카페 아르바이트나 전공 팀플, 혹은 물경력 같은 1~2년의 시간이 전부인 것 같아서죠.

결국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이건 너무 사소해서 안 돼", "이건 직무랑 상관없어서 안 돼" 하며 스스로 경험을 하나둘 삭제해 버립니다.

우리가 자소서 앞에서 작아지는 진짜 이유는 내 삶의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경험을 바라보는 해석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10년 차 HRDer이자 커리어 코치의 시선으로 그 오해를 깨트려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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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슈퍼맨이 아니라 동료를 찾습니다

많은 지원자가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회사가 세상을 구할 영웅이나 슈퍼맨을 뽑으려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거창한 성과,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는 에피소드를 찾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채용 담당자의 속마음은 다릅니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옆 자리 동료와 문제없이 소통할 수 있는 일 잘하는 생활인을 찾고 있습니다. 화려한 '스펙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작은 일이라도 그 일을 대했던 당신의 태도(Attitude)와 과정(Process)입니다.



직무의 본질을 모르면, 금광도 돌멩이로 보입니다

얼마 전, 영업 관리 직무로 이직을 준비하던 1년 차 주니어와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코치님, 저는 영업을 직접 뛰어본 경험이 없어서 자소서에 쓸 말이 없어요... 물건을 팔아본 적이 없거든요."

저는 그 친구의 지난 1년을 꼼꼼히 인터뷰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숨어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지난 직장에서 무려 50개 협력업체 매니저들과 매일 소통하고 일정을 조율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본인은 그걸 단순한 전화 돌리기나 심부름으로 치부하고 있었던 거죠.

제가 말했습니다. "야, 그게 바로 영업 관리야! 50명의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며 우리 회사 일이 되게끔 만든 거잖아. 그게 물건 파는 것보다 더 어려운 B2B 영업 관리의 핵심 역량이라고!"

그제야 친구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이 친구가 작아졌던 이유는 경험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첫째는 영업=판매라는 1차원적인 생각에 갇혀 직무의 본질을 몰랐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신의 경험을 직무 언어로 번역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대박이 아니라 증명입니다

물론, "과정이 중요하니 결과는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즈니스에서 결과 없는 과정은 미완성이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결과(Result)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합니다.

지원자들은 결과를 '매출 200% 달성', '전국 1등' 같은 거창한 수치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보고 싶은 결과는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변화된 상태(Before & After)입니다.

(X) 막연한 주장: "저는 꼼꼼하게 재고 관리를 했습니다."

(O) 증명된 결과: "매일 10분씩 먼저 재고를 정리했고, 그 결과 물건 찾는 시간이 5분에서 30초로 단축되었습니다."

30초 줄어든 게 무슨 대단한 결과냐고요? 회사는 그 작은 결과를 만들어낸 당신의 습관이, 입사 후에는 더 큰 효율을 만들어낼 것이라 확신합니다.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스스로 마침표를 찍어본 경험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당신의 삶은 초라하지 않습니다, 번역이 서툴 뿐

자소서 앞에서 작아지는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없는 것은 거창한 경험이 아닙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원석 같은 경험을 직무라는 언어로 닦아낼 해석의 기술이 없을 뿐입니다. 남들의 화려한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 씬을 비교하며 기죽지 마세요. 채용 담당자는 꾸며진 영웅담보다, 투박하더라도 자기 삶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 끌립니다.

그러니 이제 모니터 앞에서 '무엇을 쓸까(What)'를 고민하기 전에, 잠시 멈추고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Who)?

내 경험을 해석하려면, 그 경험을 한 주체인 '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직무 분석부터 덤벼들면 필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자소서 스킬보다 훨씬 중요한, [직무보다 먼저 '나'를 분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순서만 바꿔도, 당신의 자소서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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