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차 직장인의 직장생활
회사를 어찌어찌 다니다 보니 이제 39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10년 전만 해도 이렇게 오래 다닐 줄은 몰랐다. 이제 '40년은 채우자'라는 단기 목표가 생겼다. 젊은 후배들이 보면 '노욕'이라 할지 모르겠다. 10년 전에는 만 60세 정년까지 잘 다니자는 게 목표였다. 회사에서 좀 힘든 일 있더라도 지혜롭게 극복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런데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20~30대 때는 요즘 후배들과 다를 바 없이 사직서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몇 번 이직하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내 적성에는 회사 출퇴근이 맞지'하며 다니다 보니 60세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운 좋게 상근 고문으로 재계약해 다섯 번째 해를 맞이 하고 있다. 연봉은 줄었지만 할 일이 있고, 회사에 기여할 역할이 있다는 게 보람이다.
친구들 중 아직 현역으로 남아 있는 이는 드물다. 교수인 친구들은 대부분 금년에 정년을 맞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가장 오래 다닌 축'에 속하게 되었다.
내가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제일 큰 이유는 '성격'
솔직히 다른 재주는 없었다. 예술적 끼도, 탁월한 영업력도, 배포있는 사업가 기질도 없었다. 주변머리와 언변이 탁월해서 학원 사업 같은 걸 할 성격도 못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협업하고, 기획하고, 보고서를 꼼꼼하게 작성하는 일은 그럭저럭 할 만했다. 회사가 원하는 평범한 성격, 그러나 조직에서는 꼭 필요한 특징이다. 다행이었다.
돌아보면 집안내력도 작용한 듯하다. 집안 내력은 선천적인 유전적 영향과 후천적 집안 분위기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 '업'을 선택할 때 고려할 요소이기도 하다. 내 경우 할아버지는 평생 교사셨고,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정년을 맞으셨다. 동생 둘 역시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구본형 박사가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에서 강조했듯이, 가족의 DNA 코드는 자신의 강점과 직업을 찾을 때 영향을 줄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결혼과 육아, 그리고 홑벌이
20대 후반에 결혼해서 아이 둘을 얻었다. 아내는 전업주부로 육아와 살림을 전담했다. 나는 홑벌이 가장으로 계속 회사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이지만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급여는 생명수였다. 아이들 교육비, 주택 담보대출 이자와 원금, 생활비... 회사가 아무리 싫어도 책임감에 아침마다 눈 비비고 출근했다. 전날 술자리가 늦게 끝나면 다음날은 정신력으로 출근했다.
30대 후반 시절, 아내와 애견 미용실을 차려볼까 발품을 팔기도 했다. 멍멍이를 엄청 좋아하는 아내 취향을 살려 부업을 하려고 했던 것인데 월급만으로는 그림이 안 그려졌던 모양이다. 목돈 대출까지 생각하면서 사업성 검토하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수익성이 나오지 않아 접었다. '회사 일이나 열심히 하자.'
밥 먹듯 하는 야근으로 집에 오면 보통 저녁 9시가 넘었다. 아내가 작은 아이를 업고 큰 아이와 함께 아파트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곤 했다. 함께 저녁 먹는 시간은 늘 9시 반, 혹은 10시였다. 그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세 번째는 중소기업으로의 이직
세 번째 이유로 '끈기'를 적을까 하다 '중소기업 이직'으로 바꾸었다. '내가 과연 남들보다 끈기가 강했던 것일까?'라고 질문해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보다 훨씬 힘들고 열악한 상황에서 평생 업을 갈고닦는 전문가들도 많을뿐더러 내가 만약 젊은 시절에 미혼이거나 아기가 없었다면 인생 경로가 다르게 전개되었을 지도 모른다. 육아와 홑벌이 상황이 끈기 있는 태도를 유발했을 뿐이다.
그럼 '중소기업으로 이직한 것이 왜 오랜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었을까?'
나는 대기업에서 부장을 하다가 여러 사정 때문에 직원 20명 남짓한 중소기업으로 이직했다. 그 회사에서 오래 다니면서 정년을 맞았고, 지금은 직원 200명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정년 후에도 재계약해서 5년 더 다니고 있다. 중소기업이니까 가능한 얘기다. 노조 눈치 봐야 하고, 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대기업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많은 중소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 60세 정년제도와 상관없이 인력(숙련공이나 전문인력 부족 문제)이 필요하다면 융통성 있게 퇴직자와 재계약하고 있다.
대기업은 분업화가 잘 되어 있고 체계적이지만 숨 쉴 틈이 없다. 모든 걸 사규대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오너나 대표이사에게 인정받으면 자율성과 융통성이 크다. 내 조직을 만들기도, 역할을 확장하거나 바꾸기도 상대적으로 쉽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중소기업에 처음 가면 이해 안 가는 부분이 많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역량이 떨어지는 선배나 상사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업무 시스템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아 힘든 점도 있다. 연봉과 복지는 대기업에 비해 열악하다. 하지만 회사를 신중하게 잘 골라서 입사하고, 그리고 적응을 하면, 오히려 오래 다닐 수 있다. 회사도 성장하고 나도 발전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네 번째는 자기 계발과 학습
아무리 회사생활 오래 하고 싶어도 회사가 필요로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내가 정년 이후까지 일할 수 있었던 건 나이 들어도 회사가 필요로 하는 역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자기 학습이 필요하다.
나는 직장생활 중에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자격증도 땄다. 요즘은 예전처럼 석사, 박사 학위를 높이 쳐주지는 않는다. 회사도 학위가 있다고 해서 과거처럼 자동으로 연봉을 더 쳐주거나 직급을 잘 올려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위 취득은 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학습하는 방식이 몸에 밴다. 회사 일과 연관된 전공을 수행할 경우 안목이 넓어지고 깊이가 생긴다. 더구나 100세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예전보다 더 오래 일 할 것이므로 학위가 언제 어떻게 나에게 도움을 줄지모른다.
100세 시대에 오래 일하고 싶다면 자기계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조금 부지런을 떨고 학습에 투자되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투자금은 분명히 다 건질 것이다.
30대 시절엔 직장생활을 언제까지 하겠다는 계획이나 구상 같은 건 없었다. 그냥 '55세가 정년이니 그때까지 일해야겠구나'(당시는 55세 정년),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회사를 어떻게 55세까지 다닐까?'라고 생각했다.
진급에서 누락되었을 때, 커리어 관리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상사가 인사발령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을 한 번 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20대부터 40대 초반까지는 늘 퇴사와 이직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하지만 가족이 있었고, 책임감이 있었고, 운도 따랐다. 그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39년 차 직장인을 만들었다.
독자 분들 중에서 사직원을 고민하거나 창업을 검토하는 분이 있다면 한 번쯤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도 나름 괜찮을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가끔 친구 모임에 가면 이런 대화가 오간다.
'○○야, 아직 회사 다니냐?'
'응, 아직 다니고 있어. 조금 더 다니려고.'
'좋다 야. 그만 둘 생각은 절대 하덜 말고 다닐 수 있을 때까지 다녀.'
그 눈빛 속에서 나는 말의 무게를 느낀다.
회사에 오래 남아 있는 것, 그것도 삶의 한 방식이다.
혹시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회사를 계속 다니고 계신가요? 퇴사를 고민한 순간, 오래 다닐 수 있던 비결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