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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 차 직장인의 하루

정년 이후에도 일한다는 것

by 업의여정

나는 올해로 39년 차 직장인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60세 정년퇴직한 후, 1년 단위 재계약을 이어가고 있다. 상근 고문으로 근무한 지도 벌써 5년 차.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출근은 아침 9시 30분, 퇴근은 오후 5시 30분. 그전에 꼭 들르는 곳이 있다. 아침 7시 반, 동네 헬스클럽이나 체육공원. 1시간쯤 운동하고 걷는다. 20년째 지켜온 루틴이다. 아침에 몸을 풀어주고 근력운동을 해야 머리가 맑아지고 일할 의욕도 생긴다.


출근하는 발걸음은 가볍다.

젊은 시절에는 회사 가기 싫은 날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회사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청개구리 심보라고 해야 할까.


회사가 예전보다 다닐 만해진 가장 큰 이유는 역할 변화 때문이다. 정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서 가장 큰 차이는 내가 관리하는 조직이 없다는 점과 나에게 업무 지시하는 상사가 없다는 점이다. '업무를 지시할 직원도 없고, 지시를 하는 상사도 없다.' 그러니 얼마나 홀가분하겠는가?


더구나 고문은 직장인의 최대 스트레스인 매출 실적, 인사관리, 경영의사결정에서 자유롭다. 물론 그 대가로 연봉은 크게 줄었지만, 대신 직장인이 향유하기 어려운 '자유'와 '자율권'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책임과 업무 목표가 없을 순 없다.

나는 매년 상, 하반기마다 회사에 기여한 실적과 앞으로 할 일들을 정리하여 회사에 제출한다. 이 자료를 근거로 이사회는 내년도 재계약 여부를 결정한다. 계속 다니려면 의미 있는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가끔 직원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들려온다.

"회사가 뭐 경로당이야. 고문 분들은 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어."

"고문 한 명 유지하는 대신 우리 부서에 신입 두 명 충원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맞는 부분도 있고 오해도 있지만 고문들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이런 이야기 들으면서 계속 다니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젊은 직원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공감이 갈 때도 있다. 하지만 함께 협업하며 지내는 후배들 생각하면서 불편한 생각은 접어둔다.


정년 이후 직장생활 모토


정년 이후 나의 직장생활 모토는 이렇다.

"회사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내가 후배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


내가 신경 쓰는 사람은 대표이사가 아니고 후배들이다. 10~15년 후배들이 이제 부사장, 본부장이 되었다. 부서장들도 있다. 핵심 멤버들. 이들을 도울 부분을 찾는 게 내 일상이다.


나는 연말에 대표이사에게 평가받는 게 아니라 후배들에게 평가받는다.

후배들이 먼저 나를 찾아오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다만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고 세세히 지적하거나 평가하면 역효과가 난다. 부담감을 느끼면 다음에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다.

"언제든 나를 찾아오면 부담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는 너 편이다"라는 시그널을 보내주려고 한다. 일종의 '신뢰 쌓기'다.


요즘 나의 하루 일상은 이렇다.


오전


1) 경영정보 뉴스레터 작성: 자료 수집, 글쓰기

2) 사내 강연 준비(팀장 리더십) : 자료 조사, PPT 작업

3) S 부서장과 대화: 부서 운영 고충 청취, 신규 사업 아이디어 논의


오후


1) 전략기획팀/신사업팀 정기회의 참석, 의견 제시

2) ERP/경영정보시스템 개발 회의 참석, 애로사항 청취

3) 블로그/브런치 글감 정리 및 글쓰기


하루 일과 끝내고 5시 30분경 집으로 출발.

회사에서 집까지 차로 20분. 신축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예전엔 15분이면 족했는데. 회사가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지난 20년 간 아낀 시간이 상당하다.


저녁


퇴근 후 집에서 아내와 여유 있게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건 큰 행복이다.

6시 30분~8시 30분: 저녁식사 및 정리, 아내와 대화, TV 시청, 또는 반려견 산책(50분).

8시 30분~10시 30분: 독서. 가장 행복한 시간.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11시 취침.


이렇게 39년 차 직장인의 하루가 마무리된다.




이런 생활은 언제까지 가능할까?


1차 목표는 앞으로 1년 9개월 더 하는 것이다. 회사 생활 딱 40년을 채우는 것이다.

2차 목표도 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만 69세까지 근무하는 것이다.


욕심을 많이 내는 것 같지만 100세 시대가 열리면서 70세까지 일하는 건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아마 10년 후쯤엔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우스울지 모른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말고, 정신 건강과 체력을 잘 유지하고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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