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도 괜찮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오랜 직장생활의 이점

by 업의여정

브런치 작가가 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브런치스토리가 보내준 축하 메시지 '브런치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는 나에게 기쁨과 설렘을 안겨주었다. 글쓰기와 독서에 진심인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매력적인 공간에 '왜 이제야 들어왔을까?' 반문했다.


새내기가 어설프게 브런치 공간을 유영하며 선배들의 다양한 글과 작품을 읽어 보고 있다. 즐겁고 소중한 시간. 특히 직장인들이 쓴 회사생활 글 중에는 흥미롭고 빼어난 내용이 많았다. 주제와 제목, 문장 구성과 스타일 등에 대해 어깨너머로 배우는 중이다.


내 글도 발행하고 있다. 아직 매거진이나 브런치북은 시도하지 못하고 있지만 직장생활, 직장인 자기 계발 관련 9편의 글을 썼다.


어,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글 읽다 보니 '퇴사'를 주제로 한 작품이 유독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퇴사일기라든지 퇴사준비, 퇴사 전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회사로부터 독립이나 탈출을 시도하는 내용도 있고, 신중하게 작전을 잘 짜서 퇴사해야 한다는 경험담도 있다.


이런 현상은 브런치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고 최근 출간된 자기 계발서들을 살펴봐도 비슷했다. 알라딘 도서 검색창에 '퇴사'라고 치니 퇴사 관련 도서들이 줄줄이 끝도 없이 나왔다. 제목들이 하나같이 눈길을 끌었다. 제목만 보아도 직장인들이 책을 사게 될 것 같다.


<20대여, 퇴사하라>, <서른 살, 비트코인으로 퇴사합니다>, <퇴사 말고 강사>, <퇴사하겠습니다>, <퇴사 후 목공방 창업>, <퇴사인류 보고서>, <나는 무인 매장으로 퇴사합니다>, <퇴사합니다, 독립하려고요>, <퇴사 후 세계 여행하는 흔한 부부 이야기>,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 <조용한 퇴사>, <나는 퇴사하고도 월 100만원 더 모은다>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 이거 참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이 정도면 가히 '퇴사열풍'이라 할만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조용한 퇴사'가 유행했는데 아직 그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MZ세대들이 조직생활보다는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일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다. MZ세대의 주요 특질로 '일의 의미감'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태도를 자주 꼽는데, 많은 회사들이 이런 특성에 부합하는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에 방점이 맞추어진 글의 향연에 대한 반발감이다. 퇴사를 부추기는 듯한 글, '삶의 주도성'은 회사 밖에 나가야만 생기는 것처럼 전제를 까는 글, 자영업이나 1인 기업가를 하면 자유를 쟁취할 것처럼 포장하는 글 등.


너무 한쪽 방향으로 쏠림 현상이 강해서 직장인들이 선입견이나 판단 착오에 빠질까 살짝 걱정되기도 한다.

균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반대 방향을 탐색해 보는 글을 써야겠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생겼다. 퇴사의 반대편 진영이라 할 수 있는 '회사 오래 다니기'의 이점에 대해서도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도 괜찮아


오늘도 힘들게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것도 나름 괜찮다.'

'퇴사를 감행하기 전에 1년만 더 회사를 다녀보시라.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다.'


마음에 맞지 않는 상사 문제나 조직 차원의 고민거리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리기도 한다. 사내 경쟁자가 먼저 퇴사해 버리고 내가 능력 있는 일꾼으로 서서히 인정받기도 한다.


만약 현재 회사가 너무 엉망진창이어서 도저히 기대할 게 없다면,

'다른 회사로 이직해서 새로운 조직문화에 적응해 보자.'

'오래 직장 생활하면서 커리어를 쌓아가다 보면 생각지 못한 좋은 일들이 생긴다.'


많은 회사들이 일손 부족과 인력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꼭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시야를 넓혀서 중견기업이나 건실한 중소기업을 알아보는 방법도 있다. 거기서 궁합이 잘 맞는 회사를 발견할 수 있고 핵심인력으로 커나갈 수 있다.


회사 밖으로 나가서 창업을 하더라도 고객 유치를 위해 영업활동을 해야 한다. 회사에서 상사를 만족시키는 일도 힘들지만 밖에서 고객 유치 활동을 하는 게 훨씬 어렵고 강도 높을 것이다. 진상 고객도 포용해야 하고.


하지만 가장 바쁜 사원~과장 시기에 업무를 잘 배우면 차/부장급으로 가면서 일이 점점 재미있어지고 숙달된다. 특정 업무에서 사내 전문가가 된다. 승진하면서 후배들이 입사하면 실무에 허덕이지 않고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점점 권한과 자율성이 생긴다. 물론 부장급이나 임원이 되면 매출과 수익 목표 달성이라는 스트레스 요인이 생길 수 있지만 개인 사업자의 매출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으니.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오랜 직장생활의 이점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오랜 직장생활의 이점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오래'라는 의미는 20~40년의 장기적인 시간 길이를 말한다. 길게 생각해 보자.


부장급, 임원급, 경영진들은 맨날 힘들다는 얘기만 한다. 자기들은 조직에서 희생의 제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매출 실적 달성을 위한 엄청난 스트레스, 오너 눈치보기, 부하직원 관리, 고객사 접대 등 회사 일이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라고 엄살을 부린다.


과연 그럴까? 그럼 그들은 왜 그렇게 부장이 되고 임원, 경영진이 되려고 애쓰는 걸까?


그들이 말하지 않는 '회사를 오래 다닐 때의 이점'.


1) 동료 경쟁자들이 저절로 줄어든다.

오래 다니다 보면 동료들이 이직하거나 창업을 한다. 어떤 동료는 윤리적인 문제로 회사를 떠난다. 20여 년 후 뒤돌아보면 입사동기들 중 나를 포함해서 단 몇 명만 남게 된다.


2) 업무 전문성과 차별성을 확보한다.(꾸준한 커리어 관리 노력이 있어야 함)

나만의 업무 영역이 생긴다.


3) 경영진으로부터 신뢰를 얻는다. 승진한다.

경영진과 속속들이 알게 되고, 자기 진가를 인정받는다. 내 조직이 생긴다.


4) 업무의 자율성이 생기고 권한은 더욱 커진다.

남 지시받으면서 일하는 단계를 조금씩 벗어난다. 점진적으로 '자유'와 '자율성'이 생긴다.

조직생활 하면서도 삶의 주도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


5) 연봉 인상, 복리후생, 법인카드 혜택, 퇴직적립금 상승


6) 단절 없는 경력 관리

지속적인 경력 관리는 나중에 부득이 이직할 일이 생길 때 강력한 무기가 된다.


7) 후배들이 먼저 퇴사한다

건강문제나 가정사 등등 이유로 퇴직하는 선배와 후배들도 생긴다.


8) 정년 후에도 일할 기회가 생긴다

어느덧 정년. 회사에서 사람은 필요하고 마땅한 사람은 없고. 더 일할 기회가 생긴다.

100세 시대의 도래. 앞으로 정년은 연장되거나 없어질 것이다.


'이런 장기적인 이점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회사 일과 미래를 고민할 때 20~40년의 긴 기간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았는가?'


조직생활이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직장생활 꾸준히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위 이야기는 꼭 한 회사를 오래 다닌다는 가정은 아니며, 여러 회사를 거칠 경우에도 적용된다. 빠르게 100세 시대가 도래했고, 일생은 길어졌지만 회사들의 평균 수명은 짧아지고 있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이런 장기적 측면의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업무에서 차별성을 확보하고 커리어 관리를 해야 한다. 기회가 내 앞으로 다가올 때 자신 있게 낚아채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개인 사업을 하더라도 차별화된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나는 4번 퇴사하고 이직했다. 하지만 이직하면서도 회사생활은 이어갔다. 오래 직장 생활하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아직 39년 차 직장인으로 회사 다니고 있다.


요즘은 청년취업이 무척 어려운 시대다. 천신만고 끝에 입사한 젊은이들이 1~3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다. 1년 내 퇴사율은 16.1%에 달하고, 1~3년 내 퇴사를 합치면 무려 60.9%에 달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각 개인들에게 얼마나 힘든 속사정이 있었을까?


이들 중 상당수는 독립하기보다는 아마도 타 직장으로 이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역량있는 젊은이들이신입 시절부터 자주 이직하다 보면 커리어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칫 조직생활이 적성에 잘 맞는 사람들도 창업이나 자영업으로 등 떠밀려 나갈 수 있다.


정말 선천적, 체질적으로 조직생활이 어려운 사람, 또는 독보적인 개인 사업 아이디어와 영업력을 갖추고 경험도 충분히 쌓인 사람이 아니라면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도 괜찮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