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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Mar 14. 2020

한글교육이 가장 어려운 한국 엄마

싱가포르에서 겪는 다국어 언어교육

싱가포르는 다민족 국가이자 공용어가 4개나 되는 나라다.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인도)

버스, 지하철이나 공공시설을 가면 안내문이 4개의 언어로 한꺼번에 적혀있다.


싱가포르 지하철 비상구 안내판 (출처 : 구글)


싱가포르에 유학을 오는 학생들은 처음에 이곳에 오면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마스터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중국계가 전체 인구의 70% 정도로 큰 부분을 차지하기에 일상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중국어로 말을 걸 때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인턴으로 이곳을 처음 왔었을 때는, 중국어 학원에 등록하면서 의지를 불태웠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중국어가 꽤 늘지 않을까 라는 기대와 함께.

하지만 영어가 아예 안 통하는 나라도 아니고, 아무리 중국어로 사람들이 말을 걸어도 답답하면 그냥 바로 영어로 대답해도 언어소통은 가능했고, 그런 환경 속에서 일부러 노력하지 않는 이상 중국어 실력이 늘긴 어려웠다. 그렇게 중국어 공부는 바쁜 일상 속에서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엄마가 된 후, 외국어 교육에 대한 나의 생각은 조금 더 진지하게 바뀌었다.

나의 주말은 주중보다 훨씬 더 바쁘다. 다름 아닌 아이의 언어 교육 때문이다.

우리 아이의 나이는 만 5살 싱가포르 학제로는 유치원 1학년이다. 싱가포르의 교육열은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 근처 사는 엄마들이랑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우스갯소리로 싱가포르는 나라 전체가 대치동 같다는 말도 나온다. 언젠가 아는 싱가포리언 엄마가 예전 유행했던 한국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며 공감한다고 했을 때, 교육열은 한국이나 싱가포르나 마찬가지구나 라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싱가포르 현지 학교 학생들 (출처: 구글)


주중에는 현지 유치원에 보내기에 영어와 중국어로 수업이 이루어지고, 주말인 토요일은 한글학교, 일요일은 중국어학원에 보낸다. 이런 나를 보며 회사 동료들은 나를 타이거 맘 (Tiger Mom - 자녀를 혹독하게 교육하는 엄마)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대부분이 서양인인 우리 팀 동료들은 자녀들을 인터내셔널 스쿨에 보내기 때문인지 이곳 현지 학교의 교육열에 대해 실감을 못하는 것 같다. 주변의 다른 싱가포리언들에 비하면 나는 전혀 심한 편이 아니고 오히려 언어 외에도 따로 더 시키는거 없냐는 질문을 듣는다. 우리 동네 주변에 쇼핑몰들이 있는데,  쇼핑몰 안에는 별의별 학원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학원 주변의 카페들은 아이들이 수업받는 동안 대기했다가 픽업하려는 학부모들이 모두 점령하고 있다.


나 역시 아이를 낳기 전에는 주말에 학원 보내는 건 극성 엄마들이나 하는 건 줄로만 알았다. 나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사교육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공부는 스스로 자기 주도적 학습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더군다나 언어 배우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는 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니고, 대학 때는 외국어 교육도 부전공하고 교직 이수도 하고 임용고시 준비까지 생각했던 터라, 우리 아이 언어교육은 내가 직접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어는 공부라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거라 학습의 개념이랑은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막상 아이가 언어를 본격적으로 배우는 나이가 되었고, 내가 제일 신경 쓰였던 부분은 다름 아닌 한국어였다. 그래서 이렇게 환경 자체를 한 가지 언어로 노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주말이라고 하더라도 한국학교에는 꼭 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언어 교육은 최대한 아이들이 어릴 때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한글학교나 중국어학원에 가면 공부라기 보단 거의 놀이 위주라서 언어에 대한 흥미를 끌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한국 엄마들은 영어교육에 좀 더 중요도를 두는데 비해 나는 한국어야말로 제일 중요한 언어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모국어인 한국어가 탄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와 중국어는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외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한국어 환경을 조성해주지 않으면 한글 노출이 되지 않고 따라서 한국어를 일부러 하지 않는 이상 언어를 그냥 저절로 잘하게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워킹맘이라 집에 귀가하고 나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제한적이기에 더더욱 한글 노출에 대한 시간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개학이 미뤄지다가 오늘에서야 한글학교를 보낼 수 있었다. 작년 1년 동안의 학교생활 통지표를 받았는데 선생님의 종합의견란을 보고 엄마로서 반성이 되었다. 비록 발음이 정확해지고 우리말 사용이 조금씩 늘고 있으나 아직 한글이 익숙하지 않아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려고 하고, 표현력이 더 향상될 수 있도록 가정에서 우리말을 사용하는 경험이 요구된다는 말이었다. 그동안 퇴근 후 동화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주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영어책을 읽어주면 잘 듣다가도 한글책을 꺼내 들면 못 알아들어서 그런지 딴청을 피우는 아이를 볼 때 조금 김이 새는 기분이었는데 그때마다 독한 마음을 먹고 더 잘 읽어줬어야 하는데 나의 노력와 정성이 부족했던 것 같다.


또 다른 반성이 되는 부분은 아이가 말을 듣지 않고 말썽을 부릴 때도 훈육을 할때 못 알아듣는 것 같아 답답해서 영어가 먼저 튀어나오곤 하는데 이는 다중언어교육에 매우 좋지 않다고 한다. 부모 중 한 명은 지속적으로 한 가지 언어로만 말해야만 아이가 그 언어를 할수 있다고. 사실 이러다가 방학 때 한국에 데려가면 아이들은 스펀지처럼 언어를 빨리 받아들여서 금방 한글이 느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선배 엄마들의 말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자주 데려가는 것도 아닌데, 그때만 바라보고 손 놓고 있다간 한국어를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다. 또래 한국 아이들이랑 만날 때마다 엄마들은 우리 아이가 영어랑 중국어를 잘한다고 부러워하지만 나는 오히려 한글을 잘하는 아이들이 훨씬 더 부럽다. 앞으로 엄마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아이 교육문제는 나의 의지만으로만 성과가 바로 나오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더욱 어렵고 고민이 된다.


올해  나의 한글교육계획은 바로 한국어 노출 환경 늘리기 (한글학교, 가끔 한국 친구들 만나기) 그리고 한글 동화책 읽어주기다. 한국학교 선생님이 단 5분이라도 좋으니 집중해서 최대한 정성스럽게 한글책을 읽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다. 외국에 사는지라 한글책이 귀한데, 예전에 귀국하던 분으로부터 한글동화전집 중고로 사둔 게 있다. 하지만 한동안 또 귀찮아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더랬다. 오늘부터 하루에 한 권씩 꼭 읽어주리라 마음먹는다. 아무리 아이가 딴청을 부리더라도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읽어준다면 언젠가는 우리 아이와 한글로 자유롭게 대화할 꿈같은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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