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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Mar 03. 2021

방 한 칸에서 꿈을 키우던 날들

주방에서 마음껏 요리하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

소박했던 밥상


8년 전 오늘이라고 구글 포토가 친절하게 알려줬다.


당시 좁은 방 한 칸 룸 렌트해서 살던 때였고, 최대한 절약하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지금 보면 조금은 궁상맞아 보일지도 모를 1인용 밥솥과 고추장, 오징어포, 깻잎 그리고 김이 반찬의 전부였지만 한국이 그리울 때마다 나에겐 너무 소중했던 그야말로 소울푸드였다. 왠지 이렇게 쓰고 나니 외국인 노동자의 감성이 돋는 것 같다.


해외취업이라고 하면 왠지 외국인들과 퇴근 후 근사한 야경을 배경으로 칵테일파티 같은 화려한 환상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물론 그럴 때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먹는 소박한 반찬으로 향수병을 달래는 때도 있었다. 플랫 전체 렌트가 아니라 방 한 칸 렌트였기에 주방 쓰는 것도 눈치 보였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었다.


돈을 아끼던 이유는 당시만 해도 대학원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와 친하게 지냈던 동갑내기 친구는 이미 MBA 과정에 합격을 하고 싱가포르를 떠났는데 꿈을 향해 비상하는 친구의 모습이 부러웠다. 미국 MBA를 하려면 생활비에 학비에 억대라던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싱가포르 내의 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표로 했던 MBA 과정은 아무리 싱가포르라도 학비가 만만치 않았다. 비싼 물가에 생활비를 최대한 아끼는 대신 내가 스스로 벌어서 꼭 다시 학교로 가고 싶었다.


집세도 최대한 아끼려고 했고 식비도 절약하기 위해 웬만하면 집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주방 쓰기가 눈치 보여서 되도록이면 방에서 간단하게 해결을 했었다. 가끔 초라한 밥상을 보고 있노라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나도 방 한 칸에서 벗어나 다른 친구들처럼 편하게 집 전체를 렌트해서 마음껏 주방에서 요리해먹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퇴근 후, 가고 싶었던 대학 캠퍼스를 구경하러 갔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학생으로 돌아오리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결국 내 힘으로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아무런 대출 없이 나 스스로 힘으로 절약해서 마련한 너무나 뿌듯했던 학자금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MBA는 돈만 있으면 아무나 가는데 아니야?"


학비가 비싸서 돈이 있어야 하는 건 맞는데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살았던 시간들이 "아무나"라는 가벼운 단어로 치환될 수 있던 그저 그런 노력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학생으로 돌아가는 길은 참 어려웠다. 누리고 싶은걸 다 누리면서 갈 수 있는 쉬운 길이 아니라, 최대한 생활비를 절약하면서 학비를 마련했고, 퇴근 후 졸리고 피곤한 눈을 비벼가면서 나는 바보인가 수없이 좌절해가며 GMAT 책을 붙잡고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비록 많은 것들이 부족했지만 꿈만큼은 찬란했던 젊은 시간들이 어쩌면 학위 자체보다 더 소중한 경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은 주방도 마음껏 쓸 수 있고 식재료도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사줄 수 있다. 밥솥도 넉넉하게 10인용 압력밥솥도 있고 옛날에 비하면 참 감사한 일이다. 우연히 구글 포토 덕분에 1인용 밥솥에 방한칸 살 이하던 옛날 시절 추억놀이를 하면서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새삼 깨달았다.


그때 치열했던 나날처럼 지금의 나에겐 간절한 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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