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그리고 그 후

드디어 접한 승진 소식

by 커리어 아티스트

얼마 전 봤던 승진 인터뷰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기간 동안 때로는 답답하고 무기력하기도 했지만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선 열심히 일해왔다. 사무실에 있을 때보다도 재택근무 중이었을 때 더욱 필사적으로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알려야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일이 주어져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받아들이는 한편, 내가 기여하는 가치를 확실하게 실적으로 증명해야 했다.


사회초년생 시절엔 그저 열심히만 하면 고속승진할 수 있지 않을까란 순진한 생각을 했었지만, 승진이란 "열심히"만으로는 달성되는 그런 단순한 방정식이 아니었다. 묵묵히 시간을 투자하면 혼자만의 노력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공부"가 아니라, 시장 상황, 고객과의 관계, 영업실적, 내부 네트워크, 일 외적 소프트 스킬 등을 다각도로 두루두루 평가하는 현실이었다. 서바이벌하는 수준, 그 이상을 얻어내야 하는 과정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종종 있었다. 승진 심사 과정도 마치 새로 회사를 지원하는 것처럼, 공식적인 채용공고에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다른 후보자들과 똑같이 경쟁해야 했다. 저절로 편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니 혹시 실수를 하진 않을까 하는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합격소식을 들었다.


어렵게 달성한 승진이었던 만큼 합격소식을 듣고 나면 마냥 기쁠 줄로만 알았다. 도전과제를 설정하고 목표 달성하는 것을 즐기는 나로선 분명 뿌듯한 일이었다. 기다렸던 소식을 듣고나니 그동안 일해온 결실을 맺은 것의 기쁨과 동시에 따라오는 묵직한 짐 하나가 느껴진다. 승진이라는 성취감 뒤로는 분명 뭔가 더 있었다. 뿌듯함 그 이면에 숨어있던 중압감과 책임감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무겁게 매고 있던 묵직한 배낭 위에 더 큰 짐 하나가 얹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담당하게 될 분야가 늘어났다. 알아야 할 프로덕트가 많아졌고 주요 고객사들의 미팅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고객사 미팅뿐만 아니라 사내에서도 캐치업 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기다리고 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지역까지 커버하느라 아침 일찍 혹은 밤늦게 이뤄질 미팅 초대들이 날아온다.


승진으로 직급이 한 단계 더 높아졌지만 해야 할 일들은 배 이상으로 늘어난 듯하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려면 또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쏟아지는 수많은 자료들과, 새로운 인풋들을 얼른 흡수하고 싶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지만 주니어 때와 다른 점은 주변에서 친절하게 인수인계하는 럭셔리는 누릴 수 없다는 것, 시니어로서 본인이 알아서 배우고 생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승진만 하면 마냥 행복할줄로만 알았는데, 명함 직급 하나가 달라졌을 뿐인데 무게감은 천지차이다. 앞으로 더욱 잘하고 싶다는 설렘도 있지만, 그와 함께 조금씩 두려움도 느껴진다. 잘할 수 있다에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슬금슬금 떠오른다. 나의 부족함이 드러날 것 같다는, 직급에 걸맞은 실력을 얼른 쌓고 싶은데 그만큼의 내공은 아직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다. 미팅에서 뭔가 거창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직 100% 아는 것이 아니다 보니, 잘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말을 섣불리 하기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미팅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건, 무능력하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이다 보니 사람들의 말들을 집중해서 듣고 적어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려고 회의 내내 노트가 빼곡한 메모들로 채워진다. 하루 종일 릴레이 미팅을 겨우 끝내고 나니 정신이 너덜너덜, 머리 한쪽이 아파왔다.


직장에서의 성장은 꼭 수직적인 승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하는것이 아니라, 정글짐처럼 수평적으로 확장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연차가 쌓여도 굳이 승진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승진하기 전에는 승진하고 나고 누릴 수 있는 긍정적인 면들만 보였는데, 막상 이루고 나니 앞으로 감당해야 할 책임감과 중압감이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승진한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려면 앞으로 업무 소화부터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적응하려고 하루하루 내가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또 훌쩍 성장한 내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