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실적의 총정리
캘린더를 보다가 연말 평가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회사의 회계연도가 1월이 아닌 10월에 시작이라 이번 달 내로 그동안 1년의 실적을 스스로 평가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안 그래도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주랑 유럽까지 커버하느라 일이 쏟아지고 있는데, 온갖 미팅에 쌓여서 30분 단위가 아니라 느낌상 10분 단위로 일을 쳐내고 있거늘, 연말평가 마감을 내일모레까지 써야 하는데 마음만 급하고 제대로 안 써져서 불안하다.
승진은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1년 마무리 정리랑 성과평가는 제대로 써야 한다. 내가 한 일을 정확하게 실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면 일은 일대로 하고 실적은 못 챙기는 바보가 될 것 같다. 매주, 그리고 매달 나의 업무들을 기록한 내용을 찬찬히 뜯어본다. 다행히도 업무일지 기록 덕분에 빠뜨리는 것은 없겠지만 이 재료들을 어떻게 요리해서 커리어 스토리로 연결해서 수려한 문장력으로 사로잡는 글쓰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다. 이것은 마치 재료가 좋더라도 요리사 실력에 따라 고급 요리가 될 수도, 그냥 엉망인 요리가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급 영작에 대한 갈증이 최고조로 달할 때가 바로 이렇게 연말 평가서 쓸 때인 것 같다. 혹시라도 내가 한 그동안의 업무를 제대로 반영을 못할까 봐 문장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인다.
평가서를 토대로 매니저님과 연말 인터뷰도 해야 하는데, 이 때도 역시 서류에 쓴 것을 얼마나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말로서 표현하느냐가 관건이다. 글쓰기와 말하기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아무리 경력이 쌓였어도 매번 긴장되는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면서 대면미팅이 많이 없어져서 더욱 섬세한 의사소통스킬이 중요해진 듯하다. 나를 대신해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대변인으로 나를 잘 표현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를 잘 아는 건 나 자신이겠지만 말이다. 실타래가 엉켜있는 것처럼 머릿속이 복잡하고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잠시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해본다.
연말평가 역시 면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장점을 최대한 어필하는 일, 가장 자연스럽게 나다움을 일에서 풀어내는 것이다. 나는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 만큼 성과를 확인할수 있을 때, 그래서 기여한 가치를 팀 안에서 찾을 수 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고객과 그리고 내부 동료들과 하루에도 여러 번 의견을 교환하는 일은 매번 쉬운 건 아니지만 흐트러짐 없이 best version of me 로서 미팅에 참여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고객사 미팅 전에는 항상 예전 기록들을 검토해보고, 전체적인 프로필을 꼼꼼하게 보고 혹시라도 내가 놓친 부분은 없는지, 오늘의 안건에서 꼭 합의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비즈니스 주제 외에도 스몰토크도 소재를 어떤 것을 해야 좋을지 미리 시뮬레이션해보기도 한다. 아주 작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습관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나만의 차별성은 그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개선하고 싶은 건 프레젠테이션 자료 디자인을 조금 더 세련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고, 다수가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형 미팅에서 긴장하지 말고, 꼭 질문 하나라도 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1-1 미팅에서는 강하지만 여러 명이 동시에 접속하는 미팅에서 발표할 때는 엄청 긴장한다. 아무리 헛소리라고 하더라도 꼭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안 그럼 아무런 생각 없는 사람으로, 전혀 가치를 기여하는 부분이 없는 시간낭비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개선해야 할 점들은 끝없이 보이고, 부족한 점이 많지만, 연말 평가에서는 웬만하면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동안의 성과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바쁘기 때문에. 아무튼 오늘 안에는 부디 평가서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를 한잔 타놓고 책상에 다시 앉았다. 따뜻한 커피잔을 들고 커피향을 한껏 들이마시면서 다시 스스로와의 대화를 시작해본다. 나의 지난 1년을 어떻게 종이 위에 잘 담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