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거리는 커리어 야망의 눈동자

자기 계발서에서 배울 수 없는 실전의 용기

by 커리어 아티스트


여성은 업무 성과가 좋으면 당연히 보상을 받으리라고 믿으면서도 충분히 자격이 있을 때조차도 승진하겠다고 지원하는 것을 남성보다 꺼리는 경향이 있다. 니고시에이팅 위민 주식회사를 공동 설립한 캐럴 프롤링어와 데버러 콜브는 이러한 현상을 ‘왕관 징후군 Tiara Syndrome’이라고 불렀다. “여성은 자신이 직무를 충실히, 제대로 수행하고 있으면 누군가가 알아보고 자기 머리에 왕관을 씌워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뜻이다. 물론 완벽한 능력 위주의 사회라면 적임자에게 왕관을 씌워주겠지만 그런 사회는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결과를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자신을 위해 스스로 발 벗고 뛰어야 한다.

<Lean In> 중에서



나는 커리어 개발에 관한 책이나 강의를 굉장히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실전에서 사용하지 않는 지식은 아무리 많이 공부한다고 한들 그저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는 의미 없는 인풋일 뿐이다. 얼마 전에 읽은 <왕관 증후군> 역시 Lean In에서만 나온 생소한 개념이 아니었다. 그전에도 이미 수많은 책을 통해, 하는 일에 대해 증명하고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단 걸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실제로 하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것처럼 스스로를 홍보하고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 내 안에서 소곤거리는 비판의 목소리, 자기 검열 때문이다.


흔히들 사람들이 대놓고 돈이 좋다고 하면 탐욕스러운 사람처럼 보일까 봐 꺼리는 것처럼,

커리어 야망 역시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혹시라도 나대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욕심쟁이처럼 보일까 봐,

그저 조용히 성실하고 묵묵하게 일하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나대지 않아도

회사가 알아서 나의 커리어를 업그레이드 해주고, 저절로 승진시켜주고 연봉을 올려주길 바라게 된다.

하지만 스스로를 PR 하고 마케팅하는 것이 중요한 이곳의 회사생활에서

저마다 각자의 커리어를 개발하느라 바쁜데, 나를 특별히 챙겨주는 사람이 있기 힘들다.

혼자 그냥 가만히 있다가는 가마니가 될 뿐이라는 것 역시 너무 잘 아는 사실이다.


엄마가 되고 나면 커리어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뀔 줄 알았다.

일보다는 육아, 일보다는 가정 이런 식으로 우선순위가 변할 줄 알았다.

물론 우선순위에서 이동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커리어에 대한 관심마저 줄어든 건 아니었다.

아마 커리어에 욕심이 없었다면 굳이 무리해서 MBA를 할 필요도 없었을 거다.

관심 있는 업무를 위한 부서이동이나 더 나은 기회를 위한 이직 또한 하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오늘 또 한 번 깨달았다. 나는 분명히 커리어에 대한 열정이 크다는 걸.


오늘 팀 미팅에서 매니저는 얼마 전 퇴사를 한 선배의 포지션에 올 구인공고를 내겠다고

주변에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문득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


그건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오글오글거리지만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선배가 하던 일은 내가 하는 일과 거의 차이점이 없었고

오히려 내가 그동안 해온 업무들을 바탕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해온 실적 역시 좋았기 때문에 해볼 만 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소곤거림이 들려왔다.


승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퀀텀점프를 하겠다고?
네가 뭔데? 건방지게? 욕심이 너무 과한 거 아니야?



미팅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내 마음속 두 목소리는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이제까지 해온 업무를 보면 충분히 해볼 만 한데 vs 그냥 조용히 있지 왜 욕심쟁이처럼 나대느냐는 비웃음 사이에서 도저히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점심도 먹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아프게 고민하다가 결국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 덕분에 이 쉽지 않은 이야기를 전화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매니저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 어쩌면 말문이 차마 안 떨어져서 얘기하는 것이 왠지 더 어려웠을 것 같다.

커리어 관련 자기 계발서를 아무리 많이 읽고, 경력이 아무리 길게 쌓였어도 여전히 나를 드러내고 내가 원하는 걸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실전이랑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 온라인 수업 봐주면서 재택근무하는 거 괜찮냐고, 혹시 서포트가 필요한 거냐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 매니저에게 처음엔 선뜻 포지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냥 현재 진행하고 있는 딜 이야기를 하다가 통화가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어쩌지, 이대로 끝내면 안 되는데, 쭈굴거리고 꼬깃해진 마음을 애써 펼쳐보았다.


사실은 아까 팀 미팅에서 말한 공석에 관심 있다고,

여태까지 해온 일들, 실적, 스토리를 연결해서 나의 논리를 펼쳤다.

이건 무슨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커리어 야망에 대한 고백이라면 고백이 맞긴 하지만)

엄청 긴장되고 오글거렸다. 면접보는 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떨려왔다. 하지만 최대한 객관적이면서 담백하게 진심을 담아 나의 견해를 얘기하면서 피드백을 듣고 싶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말을 더듬으시는 매니저의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줄은 전혀 예상 못하신 듯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일초가 마치 일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 짧은 찰나 동안, 아 괜히 말했나. 황당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고 화를 내시면 어떡하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고 있었다.


짧고도 긴 침묵 끝에 매니저님의 대답이 이어졌다.


솔직히 이제까지 잘해온 건 사실이지만 승진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새로 맡은 업무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시간을 조금 더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지금 이 포지션은 살짝 이른 것 같다고, 조금 더 XX분야에서 경력이 길고 네트워크가 넓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래도 이렇게 커리어에 열정 있고 헝그리 정신 있는 걸 알게 돼서 반갑다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로서 나의 퀀텀 승진 시도는 굴욕적인 흑역사로, 실패담으로 끝난건가, 괜히 얘기했나 라고 생각해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막상 얘기해보니 내가 생각하던 것만큼 우려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처럼 좌절스럽지도 않았다. 건방지고 당돌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라는 미리 걱정을 했었는데, 저지르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넥스트 스텝으로 가기 위해 방향성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고, 매니저님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 뭔지 알았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또 다른 기회가 왔을 때 오늘을 떠올리실 수 있을 테니까.


커리어에 욕심이 있는 건 나쁜 것이 아니다.

실력을 바탕으로 한 욕심은 열정이고, 오히려 열정이 있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걸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건 책에서 읽는다고, 강의를 아무리 많이 듣는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운전을 아무리 책으로 배워도 실전에서 헤매는 것처럼, 실제로 해보지 않고선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이런 용기인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커리어에서 시도나 도전을 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끝으로 매니저에게 수화기를 들기 전 나에게 아낌없는 조언과 소중한 코칭으로 용기를 담아준 언니에게 감사를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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