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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Sep 30. 2021

일을 잘한다는 것

싱가포르 부동산 에이전트와의 만남


일을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머리 능력은 시험을 봐서 수치화하거나 점수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업무별로 하는 일이 다르고 평가를 하는 기준 역시 제각각이기 때문에 잘하고 못하고를 정하는 것이 애매하다. 그런데 확실히 일을 잘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기본적인 자세부터 다른 것 같다.


동네에 신축으로 들어서는 아파트에 관심이 생겨 구경해볼까 해서 들어갔던 쇼룸에서 만난 그녀 K는 싱가포르 부동산 에이전트였다. 누군가의 추천도 아니었고, 그저 랜덤으로 만나게 된 거였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사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그냥 구경하는 것 같으면 대충 설명하다 말겠지 했다. 대부분의 부동산 에이전트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시작부터 달랐다. 대충이 아니라 굉장히 성심성의껏 정성을 담아서, 내가 궁금해하는 부분을 말하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긁어주는 듯한 대답을 해줬다. 쇼룸의 레이아웃도 참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시장분석까지 묻어난 설명에 점점 신뢰가 생겨 왓츠앱으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연락처를 주고 받는 순간에 앞으로 광고성 스팸 메세지, 혹은 부담스럽게 구매를 재촉하는 메세지를 보내는건 아닐까란 의심도 순간 들었지만, 그 후에도 그녀는 부담스러운 하드 세일즈는 하지 않았다. 적절히 현재 부동산 시장 업데이트도 해주고, 주변 시세 정보를 이야기해 주었다. 부동산 시장 업데이트, 신문기사 포워딩에서 그치면 평범한 다른 에이전트가 다를 바가 없었겠지만 그녀는 역시 달랐다. 단순 정보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입장에서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녀의 분석, 의견을 담아서 내가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한 발자국 더 앞서서 말했다. 혹시라도 내가 질문을 한다고 하면 매우 신속한 속도로 상세한 설명을 꾹꾹 눌러 담아 정성껏 해주었다. 그 이후에도 궁금한 점 몇 가지가 생겨서 직접 다시 만나기로 했다. 아직 매매 결정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만나는 게 과연 잘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왠지 그녀라면 현명한 타이밍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나기 전에 그녀는 몇 가지 사전 질문을 했다.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해서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두루뭉실한 제네럴한 답변은 시간낭비일수도 있으니까 나에게 꼭 맞는 해결책을 찾아주겠다고 했다. 답변을 보낸 후, 일주일이 지나서 다시 만난 그녀, 현재 살고 있는 집 계약이 끝나고 이 집을 선택하게 될 경우 장단점을 분석해서 이야기해주었고, 만약 구매하게 될 경우의 예상 현금 흐름, 대출 가능성 등, 계속 월세를 살게 될 경우 장단점 등,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옵션들을 1,2,3으로 리스트 업하고 질문들을 파악해서 FAQ형식으로 아이패드에 깔끔하게 정리해온 슬라이드를 보여주었는데 한마디로 감동적인 프레젠테이션이었다. 투자금만 있으면 그녀에게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고객의 고민점을 고객의 입장에서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처리 능력은 이제까지 만난 다른 에이전트들과는 전혀 달랐다.

 

분야는 다르지만 그녀의 일처리 능력을 보면서 나 역시 고객을 상대하는 세일즈 직군에 있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점이 많았다. 일은 기계적으로, 그저 해야 하니까 영혼 없이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고객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실질적인 가치를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예를 들면 부동산 신문기사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정보다. 정보를 던져주는 것에서 그치면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그 기사가 의미하는 바를 나의 해석, 분석과 함께, 고객이 궁금해할 만한 점들을 한 발자국 앞서서 플러스 알파로 전하는 것, 고객이 전문가에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런 점이 아닐까 싶다. 세일즈는 외향적이라고, 말을 많이 한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지만 꼼꼼하고 차분하게 고객의 문제를 해결을 중심에 두고, 부드럽지만 강력하게 나만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 고객을 VIP로 느끼게 하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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