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리어 아티스트 Oct 06. 2021

커피는 언제나 옳다

믹스커피를 끊지 못하는 이유

"보글보글"


매일 새벽에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일과는 바로 주전자에 물을 올리는 것이다.

새벽엔 원두커피를 마시지만, 산책하고 돌아와서 글을 쓸 때 내가 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믹스커피다.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집에 멀쩡하게 커피머신도 있고, 드립 커피 기구도 있지만, 글을 쓸 때는 꼭 믹스커피 향을 맡고 나서야 시동이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실 다이어트를 생각하면 설탕이 가득 담긴 믹스커피는 아주 멀리해야 하는 것이지만, 고소하면서 달콤 쌉싸름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질 때야 비로소 글이 써지는 듯하다. 특히 오늘처럼 글감이 꽉 막혀서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것만 같은 날엔 더더욱.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 이지안이 믹스커피 두 개를 타 먹던 모습이 생각난다. 고달픈 하루 끝에 잠을 깨우려고 하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험기간 때 밤늦게까지 공부하면서 잠을 깨려고 그때 처음으로 믹스커피를 마셨다. 어린 시절엔 커피를 드시는 부모님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은 이렇게 씁쓸한 걸 왜 마시나 했었다. 그런데 막상 커피를 마시고 나면 카페인 영향 때문인지 잠이 달아났고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커피 광고에서는 따뜻한 햇빛이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서, 한껏 여유 있는 모습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지만, 나에게 커피란 여유와는 거리가 있는 치열한 하루에서 마치 곁에서 잠을 깨우도록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친구 같은 존재다.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는 시험기간에 나와 함께했던 믹스커피는, 회사원이 된 지금은 나른한 오후에,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 동안에도 나의 곁을 지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과 만나는 외부 미팅이 있을 때는 설탕이 듬뿍 든 믹스커피 대신,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나 카푸치노를 마시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특히 우유거품 가득한 카푸치노는 나의 가장 좋아하는 커피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에서 뭔가에 몰두해야 할 때는, 믹스커피 향을 맡을 때야 비로소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이 한층 살아나는 기분이다. 헝그리 정신이 묻어나는 맛이라고 할까. (두툼한 뱃살을 보면 헝그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ㅡㅡ)


싱가포르에물론 로컬 믹스커피를 마트에서 살 수 있다. 그런데 싱가포르의 믹스커피는 한 번에 사용하는 커피 패키지가 양이 많고 뚱뚱하다. 그리고 로컬 커피 특유의 텁텁함이 있는데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꼭 한국 마트에서 한국의 믹스커피를 따로 구매하는 사치(?)를 허용한다. 물론 한국에 비하면 비싸지만 그렇게라도 한국을 향한 그리움을 달래며 옛날 내가 살던 치열함이 담긴 열정을 지금으로 그대로 옮겨오고 싶단 생각이 든다.


달콤 쌉싸름한 향을 풍기며 오늘도 믹스커피는 나의 글쓰기 연료가 되어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행 비행기표, 그리고 수많은 절차들 앞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