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새로 조인하게 될 일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던 날이었다.
바쁘게 미팅 자료들을 뒤적이고 있는데 문득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작가님을 저희 출판사에 저자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순간 모든 장면이 일시정지인 것처럼 멈춘 듯했다. 귀에도 들릴만큼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출간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이 오다니...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한지도 벌써 2년이 흘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갑갑한 격리생활, 락다운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활동이 한정되어있었을 때 삶의 의욕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할 수 있던 것들이 바로 걷기 운동과 글쓰기였다.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어제와 별다를 것 없는 오늘을 사는 것이, 같은 틀 안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회사생활은 재택근무를 하고, 육아를 하면서 흘러가는 시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낼 수도 있었지만, 해외생활을 오래 하면서 느꼈던 것은 지금의 일상을 기록하지 않으면 나중에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허무함이었다. 심지어 어제 점심엔 무엇을 먹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데, 그래도 그냥 이대로 흘려보내기만 하기엔 아까운 시간이었다. 매년 하는 리추얼 중 하나가 올해 나만의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인데, 코로나가 시작된 후 결정한 도전이 바로 나의 글을 담은 책을 서점에서 만나고 싶다는 꿈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대단해 보이는 그 목표를 공개적으로 밝히기가 부끄러워서 조용히 다이어리 한 켠에 적어만 두었다.
그리고 나의 일상을 기록으로 담담하게 적어나갔다. 화려한 표현이나 한순간에 매료시킬만한 필력은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무작정 조금씩 써 내려갔다.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하면서 브런치에 글을 꾸준하게 연재했다. 대단하게 성공한 사람은커녕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워킹맘의 삶에 누가 관심이나 있을까 싶었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더라도 답답한 코로나 락다운 상황에서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물론 의지력이 매우 약했던 나였기에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감사하게도 마음이 맞는 분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계속해서 써나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글이 모이고 나서 용기를 내서 출판사 문을 두드려보았다. 브런치 작가 분들 중에 가장 부러웠던 분들이 바로 종이책 출간저자라는 경력을 가진 작가님들이었기 때문이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에 메인이나 포털사이트에도 글이 노출된 덕분에 조회수가 엄청 많이 올라가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잠깐일 뿐이었고 정말 이뤄보고 싶은 꿈은 바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종이책을 출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책의 저자가 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수많은 이직을 통해 많은 거절들과 실패의 경험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이라는 후광을 벗어나서 오로지 나만의 이야기로서 도전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거절 메일을 받을 때면 그럼 그렇지 내 주제에 무슨 작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없이 움츠러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은 작년에 한국에서 서점에 갔을 때 특히 심했었다.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작가님들은 정말 너무나도 많았고, 내 글은 그에 비해서 한없이 부족해 보였다. 브런치에 연재하는 글들을 전부 다 내리고 싶을 정도로 심한 슬럼프가 왔고, 문득 부끄럽다는 느낌에 글쓰기를 한동안 중단했었다. 그때 나에게 다시 용기를 줬던 건 바로 주변 분의 진심이 담긴 응원의 말이었다. 덕분에 어렵게 힘을 내서 다시 글을 써 내려갔고, 결국 감사하게도 몇 군데에서 제안을 받은 후, 고민 끝에 최종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나니 설렘과 함께 살짝 긴장도 된다. 이제 정말 제대로 된 원고를 써 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재수 없는 느낌이 가득 묻은 불필요한 자기 자랑류의 글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에 글쓰기 할 때마다 나는 셀프 필터링이 강력하게 발동하는데, 이번에야말로 누군가에게 정말 도움이 될만한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나에게 소중한 기회를 주신 출판사에게 감사한 마음, 그리고 앞으로 서점에서 만나게 될 나의 책을 기대하면서 나는 오늘도 꾸준하게 글 쓰고 성장하는 루틴을 유지하고 싶다. 평범한 하루일지도 모르지만 그 하루하루의 기록들이 모여 작가의 꿈을 이뤄준 것처럼, 비록 조금 느리지만 꾸준하게 나만의 스토리를 단단하게 엮어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