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미팅할 때마다 마법의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요즘 회사에서 발표할 기회가 자주 있다. 물론 프레젠테이션이야 예전에도 하긴 했지만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 하다 보면 긴장감 때문에 초반에 목소리가 심하게 떨린다. 뿐만 아니라 두통이 생기고 입안은 바짝바짝 마르고 손발이 차가워진다. 유난히 떨리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식은땀이 흐르고 땅 밑으로 꺼지는 것처럼 움츠러들면서 내가 마치 바보처럼 느껴진다. 따가운 남의 시선이 의식되기도 하면서 자신감을 잃는 것 같다.
친구는 나에게 쫄지 않아도 된다고, 어차피 너처럼 경력이 많은 사람이 없다고 편안하게 하면 된다고 격려의 말을 건넸다. 다시 한번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이켜본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떠듬거리지도 않고 자신감있게 세련된 문장과 어휘를 구사하는데, 나는 그에 비해 너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도 나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료들은 나에게 전통 업계 출신으로서의 신선한 견해나 새로운 시각을 궁금해한다. 완벽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굳이 나를 괴롭히거나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두려웠던 건 무엇일까. 타인이 나를 바보같이 볼까 봐 걱정스러웠는데, 사실 입장을 바꿔서 누군가가 발표를 하는데 목소리를 떨고 있으면 난 그 사람을 바보라고 볼까? 아니다. 그저 애처롭고 안쓰럽게 보일뿐이다. 그러니까 "바보처럼" 보일까 봐 두려운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였다. 엄격한 기대치를 들이대고 왜 이것밖에 안되냐며 계속해서 채근하고 재촉하는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던 것이다. 좀 부족하면 어떤가. 부족함을 드러내는 용기도 필요하다. 오히려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기꺼이 드러낼 때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새로운 도전이었던 이 분야에서 나는 어쩔수 없는 초보이자, 지금은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거니까, 충분히 모를 수도 있는 것이다. 한 달도 안 돼서 전문가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마치 세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마라톤을 하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잘 아는 모습도, 부족한 내 모습도 둘 다 부정할 수 없는 나이다.
시선이 타인을 향해 있거나 남을 따라가려고 할 때 나만의 빛을 잃는 것 같다. 타인을 부러워만 하고 있으면 스스로가 초라해지는데, 이때 해야 할 것은 시선을 밖이 아닌 안으로 돌려서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도 채워야 하는 단점보다는 이미 훌륭하게 갖춘 장점에 집중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하려고 할 때 마음이 힘들어진다. 그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면 충분하다. 다른 사람을 따라 하려고 할 때 빛을 잃는다. 진정성 있는 나다움을 잃지 않을 때야 비로소 반짝반짝 빛을 낼 수 있다. 내가 바라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은 다를 수 있으니까,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하는 건 불가능하다. 중국어와 일어를 잘하는 동료를 보고 부러웠지만 생각해보니 나 역시 베트남어를 할 줄 안다. 발표할 때 목소리가 떨리는 건 다른 사람들이 의식돼서 잘하려고 너무 힘이 들어가서 이기도 하다. 긴장될 때면 마음의 속도를 조절하고 그 순간에 머물러서 다시 떠올려야겠다. 이미 충분하다고. 그리고 망해도 괜찮다고 말이다. 나는 아직 조인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실수할 수도 있다고. 가지지 못한 것보다 내가 이미 가진 것에 집중할 때, 자신감 회복이 가능하다.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는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싶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두통이 오려고 할 때 크게 심호흡하고 나 자신을 조금 더 토닥여주려고 한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따뜻한 허브티를 마시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응원해야겠다. 어설프고 서투르고 실수해도 괜찮다. 배워가는 중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넌 이미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이다.
우연히 아래 기사를 읽었다가 기억에 남는 부분들을 옮겨본다.
-영화 ‘돈 룩업’을 보면 지구 멸망을 전하면서도 농담을 하더라고요(웃음). 젊은 날의 송은이는 어땠나요?
“요즘엔 옛날 동영상들이 인기잖아요. 재석이랑 지금 그걸 보면서 배꼽을 잡아요. 그 시절을 보면 ‘너무 안 웃겨서’ 웃겨요. 유재석은 울렁증이 있어서 너무 벌벌 떠니까 웃기고, 저는 너무 자신만만해서 힘만 주고 못 살려서 웃기고.
코미디는 적당히 힘 빼고 틈새 호흡에 치고 빠져야 하는데… 그때는 경험치가 적으니 몰랐어요. 힘을 뺄 때 좋은 게 나온다는 걸.”
-코미디언으로서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잘 못 했죠. 유행어도 없고 크게 웃기지도 못했어요. 코미디 연기 잘하는 친구들은 따로 있어요. 숙이, 봉선이, 영미, 신영이 같은 후배들 보면 경이로워요. 많이 부럽죠(웃음). 그런 천재들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내가 바라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은 다르구나.
대신 저는 순발력과 말재간이 있고,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어요. 저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나름의 ‘성장 포인트’가 있는데, 그게 일반인과 하는 교양 프로였어요. ‘느낌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좋은 나라 운동본부’... 일반인 인터뷰는 방송인과 예능 티키타카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데, 저는 신기하게 그런 게 더 재밌더라고요.”
-정체성을 계속 탐구했군요.
“네. 제가 1993년에 데뷔했으니까, 올해로 30년이 됐어요. 그동안 이 일을 하면서 10년 주기로 물었던 것 같아요. “나는 뭘 잘해?’ 처음엔 코미디 연기를 좋아했지만, “그거 말고 정말 잘하는 게 뭐야?”를 재차 물어갔어요. 제가 잘하는 건 ‘잘 들어주는 것’과 ‘새것을 탐구하는 것’ 그리고 ‘친구들과 재미난 일 벌이는 것’이었어요.
‘아, 나는 공동작업을 할 때 반짝반짝 빛나는구나.’
-마지막으로 어떤 식으로든 인생에서 막다른 전환기를 맞고 있는 분들에게 조언을 부탁합니다.
“후배들에게 종종 하는 말인데요. 해지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나듯, ‘생각나는 걸 일단 해보라’고 해요. 아이들 교육할 때도 ‘자기를 다치게 하는 위험한 짓만 아니면’ 많은 시도를 허용하라잖아요.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생각에만 빠져있는 게 사실 가장 위험해요. 죽을 정도만 아니면, 다 경험으로 저장되고 쓰이더라고요.
찰리 채플린이 그랬다면서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저는 이제 그 말이 완전히 이해가 됩니다. 자기가 어떤 상황극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떨어져서 보면, 좀 힘을 빼고 웃게 되더라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