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장을 다녀온 이후
싱가포르에서 도쿄를 경유해서 미국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2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이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항상 말로만 들어오던 그곳, 생전 처음으로 가보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향하는 동안엔 기대감이 가득했다. 대학 졸업반 시절, 인턴으로 갈 뻔했던 곳이기도 했지만 나의 외국생활 대부분은 아시아 안에서만 맴돌았다. 유럽도 여행을 다녀오긴 했지만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미국은 왠지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여행으로도 다녀올 법하지만 어쩐지 인연이 닿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런데 결국 출장으로 다녀오는 기회를 드디어 마주한 것이다.
텍사스에서 열리는 중요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간 것이었는데 미국 엘에이에서도 국내선으로 경유를 해야 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가 이미 끝난 것처럼,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싱가포르와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함께 출장을 갔던 사람들 중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몇몇은 결국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미국에 처음 도착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참 안부인사를 자주 묻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은 개성 있는 옷차림, 그리고 큰 목소리로 자신감 있게 말하는 모습이었다. 컨퍼런스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동안, 나 역시 덩달아 자세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어깨를 펴고 목소리 톤을 높여서 조금 더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했다.
또 다른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패널 토론 이후 무대 비하인드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관심 있었던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던 연사에게 추가 질문이 있어서 무대 뒤로 가보니 이미 그곳에는 패널리스트와의 네트워킹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괜히 유난스럽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혹은 그냥 귀찮아서 일부러 줄까지 서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질문들을 적극적으로 자신감 있게 하는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 묻혀서 나 역시 그 인파들 사이에서 차례를 기다리게 되었다. 줄을 기다리는 동안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짧은 몇 분 안에 파워풀한 엘리베이터 핏치를 하기 위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몇 시간 동안 고생해서 먼 거리를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기껏 이런 자리에 와서 조용하게 있다가 아무런 수확 없이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나의 의견을 표현했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봤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했다.
패널리스트 중에서는 나보다 훨씬 경력이 짧은 사람들도 자신만의 논리를 갖고 이야기하고 다른 패널들과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의견이 혹시라도 정답이 아닐까 봐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걸,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느꼈다. 이젠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아는 내용을 토대로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것 역시 중요했다. 상상 속에서 막연하게 그려오던 미국이란 곳은 막상 가보니 엄청 대단하다기 보단, 결국 사람들 사는 곳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장을 다녀오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극도 많이 받고, 앞으로 스피치를 할 때, 그리고 네트워킹을 할 때 어떤 식으로 포지셔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도 느꼈다. 아마도 이렇게 현장에서 부딪히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들이었을 텐데, 경험이란 역시 배움에 있어서 제일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는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느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