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 나는 누구
째깍째깍-
시곗바늘 소리가 방안을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뒤척이면서 눈을 감아보아도 쉽게 잠은 오지 않았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책상 앞에 앉았다. 스탠드 조명을 희미하게 두고 컴퓨터를 켰고 여태까지 일을 했다. 학창 시절 새벽잠을 아껴가면서 공부해본 적은 있지만, 잠을 설쳐가면서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해본 적이 있을까 싶다. 출장 후 쌓여있는 메일함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발표 자료를 준비하면서 정신이 점점 또렷해졌다. 시차 적응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서 자정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고 나니 어느덧 동이 터오를 무렵이 되었다.
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몰입해서 일해본 적도 드문 것 같다. 회사 명함 안에서의 나보다는 그 밖에서의 내 모습이 궁금했던 나였는데 완전히 일에 올인해서 온갖 정성을 쏟는 중이다. 새로운 일은 어렵지만, 그래서 가끔은, 아니 자주 내가 바보 같단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알아갈수록 묘한 성취감이 꽤 재미있는 것 같다. 정체되지 않고 조금씩 나아간다는 것, 새로운 자극을 받는 성장하는 느낌이 좋다. 오늘도 중요 미팅이 몇 개가 기다리고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부담스럽지 않고 이젠 기대가 된다.
물론 일을 하면서 항상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일을 결국 사람과 하는 것이기에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조율에도 신경써야하고, 점점 늘어가는 업무영역들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개인의 성과 중요도가 더 높았던 팀원이었을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점점 업무 범위가 넓어지면서 팀워크를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잘하게 환경을 만들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생기는 중이다. 일이야 내가 노력하기에 따라서 조절할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생각이 있다. 아이들과의 시간에도 이렇게 정성을 쏟아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이다. 요즘 잦은 출장으로 인해 아이들과 충분히 놀아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초등학교 첫 방학인데 벌써 절반 이상 출장 가있느라 함께 해주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틈나는 시간에 아이들을 생각하며 선물을 샀다. 알록달록한 유니콘이랑 무지갯빛 장난감들을 볼 때면 저절로 아이들 생각이 났다. 집에 가면 아이들이랑 많이 놀아줘야지 생각했는데 밤새워서 새벽에도 일하고 있는 엄마라니-_-; 반성해야겠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니 낮에 정신이 몽롱하다. 얼른 다시 싱가포르 시간으로 시차적응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