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무게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되는 것

by 커리어 아티스트

올해 반기 성과평가를 쓰다가 문득 기록하고 싶어서 개인 노트북을 켰다.


입사 5개월 차이지만 마치 5년과 같은 분량을 꽉꽉- 눌러 담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농도가 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일의 양도, 무게도 많지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기보단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진다. 결코 쉽지 않은 일들 사이에서 어떻게 동기부여를 받고 있는 건지 지난 몇 개월을 돌이켜 보았다.


1) 커버하는 지역이 아시아로 한정되어있지 않고 전세계라는 것


예전 직장들은 전부 다국적, 글로벌 기업들이었다. 예전엔 그런 외국계에 입사하면 저절로 국제적인(?) 커리어가 쌓일 줄 알았는데, 사실 큰 기업일수록 이곳에서는 전체적인 시장 전략을 짠다기보단 아시아 지역본부로 한정돼서 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본사가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경우에 아시아의 의견보단 본사 헤드의 의견에 무게가 실리는 편인데 이곳에서는 우리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점이 신선했다. 책임감이 따르지만 이곳이 본사이기 때문에 전략을 우리가 짤 수 있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어서 미친 듯이 바쁠지언정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서의 일의 무게와 의미는 굉장히 다르게 다가온다.


2) 리딩 하는 포지션


예전엔 내가 하는 파트만, 부분적인 일을 잘하는 것에 치중하는 Individual contributor의 성격이 강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팀 전체의 성과도 볼 줄 알아야 하고, 사람들의 마음도 들여다 보고 때로는 동기부여를 해야 하는 부분도 업무범위에 점점 포함되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상사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고, 리더십이라는 부분에 대한 책도 자주 읽게 된다. 일을 잘하는 것은 오히려 나만 잘하면 되니까 컨트롤하기가 쉬운데 사람들의 마음을 챙기는 부분은 굉장히 복잡하고 예민한 감정을 읽어내야 해서 조심스럽고 어려운 것 같다. 혹시라고 꼰대처럼 보일까 단어 선정에도 심혈을 기울이게 되고,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함께 일하는 파트너 입장에서 도와주는 동반자로서의 포지셔닝을 하고 싶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배운 코칭 대화가 은근 도움이 되는 것 같고, 질문의 기법도 조금 더 깊게 공부해보고 싶단 생각도 든다.


3) 새로운 산업, 배움의 기회


산업 자체가 아직 초기단계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업계 트렌드 속도가 참 빠른 편이다. 그래서 장기 계획을 세운다기보단 오늘 하루에 집중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앞으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에 때로는 불안해지기도 한다. 분명한 건 시장 상황에만 의존하기보단 지금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막연히 불안해하기보단, 중심을 단단하게 지키고 모든 순간을 배움의 기회로 활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너무나 다양한 산업의 거래처들을 만나는 데 모든 회의들이 한 번도 같은 내용으로 겹친 적이 없어서 배워야 할 것들이 정말 많다. 남들은 미처 모르는 분야를 조금 일찍 배워서 아는 내용이 많아지면 내가 내는 목소리의 무게가 달라지기에 더욱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일이 바쁘기도 하고 잦은 해외출장으로 인해 시간이 예전보다 훨씬 빨리 흘러가고 있다. 입사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기 평가를 쓰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들떠있지 않고 차분하게 앉아 나 자신과 마주하고 생각하며 기록하는 습관은 잊지 않고 싶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사이에 녹아있는 소중한 경험들이 공기 중으로 허무하게 흩어져버릴지도 모르니까, 잊어버리지 않게 이렇게 차곡차곡 배움의 과정들을 기록해 두고 싶다. 마치 여행기를 쓰는 것처럼, 커리어 여정의 순간들을 담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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