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약간 망설여진다. 외국인들이 모이는 모임에서는 대부분이 오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길어야 7-8년 정도인데 15년 차라고 하면 정말 오래되셨네요 라는 말이 나오고 나는 순식간에 옛날사람이 되는것 같다. 솔직히 나도 이곳에서 2-3년 머물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래 있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내가 처음 왔던 때는 지금은 랜드마크가 된 마리나베이샌즈나 가든스 바이 더 베이도 생기기 전이었다.
대학생 시절,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내가 하지 못했던 경험 위주로 당시에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던 봉사활동, 인턴, 모임들을 알아보았다.대학생으로서 겪어볼 수 있는 모든 기회들에 나 자신을 끊임없이 노출시켰던 것 같다.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모든 것들에 서슴없이 나 자신을 부딪혀보게 했다.기회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굳이 스펙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는지 스스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도대체 앞으로 어떤 진로를 정할 수 있는지 경험을 통해 테스트해보고 싶어서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뭐가 그리도 하고 싶은 게 많았는지 틈만 나면 일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 사진첩에 대외활동을 할 때마다 폴더를 하나씩 늘려가는 게 나의 취미였다.
내가 결정적으로 해외 취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당시 한국무역협회와 산업자원부에서 주관한 <청년무역인력양성사업>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알게 되기 전에는 스위스 제네바로 보내주는 유엔 인턴에 지원할 것인지 한창 고민 중이었었다. 대학 졸업반이던 당시의 나는 모의유엔총회를 두어 번 겪으면서 더 넓은 세계로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고, 둘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결국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무역이란 세계에 대해 배워보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청년 무역 때 2달간의 짧지만 인텐시브 했던 무역연수를 마치고 미국 LA 파견으로 인턴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어이없게도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가 안 나오는 바람에 대신해서 차선책을 결정해야 했다. 영어권 국가인 유럽의 영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 뭔지 모를 직감에 나는 싱가포르를 선택했었다. 영국은 생활비가 너무 비쌀 것 같았고, 일본 다음으로 아시아의 선진국이라는 싱가포르는 처음에 어디에 위치했는지도 몰랐던 나라였기에 신비롭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순수한 호기심으로 싱가포르를 결정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크게 와 닿았던 점은,한국에서는 하나의 Pride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졌던 영어는, 다들 영어와 중국어 2개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싱가포르 사람들 사이에선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충격이었다. 영어는 수단이지 목적이 결코 될 수 없었다. 영어를 전공했던 나로선 앞으로 취업 쪽으로 생각이 기울던 당시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그리고 이렇게 정신이 벌쩍 들만큼 나에게 자극을 준 이 싱가포르라는 작지만 경쟁력 있는 곳에서 일해보고 싶단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인턴생활이 끝난 후에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나의 첫 사회생활을 한국 말고 외국에서 경력을 쌓는 것도 해볼 만하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 선택이 결국 지금의 모습으로 연결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난 그렇게 해외취업에 성공하고,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삶을 이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오면서 만났던 많은 재능 있던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 중에서도 나처럼 해외취업을 하고 세계 각지 곳곳에서 저마다의 꿈을 향해 열심히 살고 있는 분들과 꾸준히 연락을 하고 지낸다.
얼마 전 오랜만에 베트남에서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대학시절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 때 알게 된 선배는 한 철강회사의 베트남 지사로 취업을 하고 나처럼 해외에서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잘 지내는지 별일 없나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했다. 타지에서 일하고 지내는 사람들끼리의 공감대라고 해야 할런지, 특별할 것 없는 안부전화지만 이럴 때마다 얼마나 반갑고, 할 얘기는 많은지 모르겠다. 베트남에서 일은 어떤지, 요즘 분위기는 어떤지, 언제 싱가포르로 출장 올 일은 없는지, 만만찮은 타지 생활을 겪은 우린 통화 중에 아무 말을 안 하고 있는 침묵마저도 서로에 대한 응원과 위로가 되기도 한다.
가끔 매너리즘에 빠지다가도 해외에서 이렇게 선배가 가끔 연락을 묻거나 하게 되면 역시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구나, 나도 나태하게 지내면 안 되겠구나라는 자극이 된다. 해외생활은 마냥 신나고 즐겁기만 하지는 않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이기에 이곳에서 외국인으로서 일을 하면서 직장인으로서의 나름 고민도 다시 생겨나고 지칠 때도 있지만, 예전에 내가 갖고 있던 다짐들과 초창기에 겪었던 기억들을 다시 들춰보고 처음의 각오를 돌이켜보면서 마음을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