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주말이었다.
나의 싱가포르 친구 슈앙한은 나에게 더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소개해 주겠다며 인터내셔널 파티로 초대했다. 그곳은 바로 카우치서핑 (배낭여행객들이 호스트 집에 무료로 숙소를 제공받는데 소파에서 묵는 걸 의미)의 호스트였던 한 일본인 아저씨가 연 생일파티였다.
마침 그곳에 묵는 한 독일인 친구가 생일을 맞아서 그곳에 묵는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포트럭 파티였는데 각자 음식을 가져와야 했다. 당시에 내가 지내던 숙소에서는 취사가 금지되어 있었기에 직접 한국음식을 못해가고 근처 식당에서 테이크 아웃으로 주문해서 가져갔다.
생일파티에는 거의 20명 정도의 친구들이 있었는데 각기 다른 국적을 갖고 있었다. 미국, 독일, 인도, 멕시코,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영국, 일본, 한국 등. 마치 대학시절 모의유엔 하던 때가 생각날 정도로 다양했다. 우리는 전부 싱가포르에서 외국인으로 지낸다는 동질감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느끼는 점에 대해서 한창 수다를 떨었다.
미국 시카고에서 온 사라는 마치 영화배우 앤 해서웨이를 닮은 이쁜 친구였다. 동남아를 여행 중이고 지금은 싱가포르에 잠시 머무르는 중이라고 했다. 싱가포르 오기 전에는 발리에서 지냈다고 했다. 사라의 직업은 여행작가, 극작가였다. 여행하면서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리는데 꽤 수입이 괜찮단다.
영국인인 나비는 법을 전공하는 친구인데 역시 변호사를 꿈꾸는 친구여 선가 말을 엄청 조리 있게 잘했다. 그녀는 변호사를 하기 전에 좀 더 넓은 세상 구경을 하고 싶었고, 특히 아시아에 관심이 많아서 서양인으로써 아시아 문화에 제일 적응하기 수월해서 beginner 레벨이라고 불리는 나라 싱가포르를 여행 중이라고 했다.
사라와 나비, 두 친구 모두 9 to 5 job은 너무 지겨운 것이라며 직업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세상엔 너무 흥미로운 것들이 많은데 오직 한 가지 직업을 선택해서 9-5시까지 일생의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다고 한다.
세상은 너무나 흥미로운 곳 (출처 : pexels)
말레이시아 친구 마틴은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싱가포르에 직업을 찾기 위해 잠시 왔다고 했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목표가 뚜렷하고 확신을 갖고 있었다. 자기는 people person이며 고객 서비스 분야가 가장 적성과 잘 맞아서 호텔에서 일하고 싶다고, 그리고 관광 쪽이 발달해서 호텔이 많은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탈리아에서 온 루카였다.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는 처음 만나보는 것이었다. 루카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이탈리아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하니, 영화 대목 하나를 이탈리아어로 말해주면서 이탈리아에 여행 온 적이 있냐고 물어본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출처:위키피디아)
너무 가보고 싶은 이탈리아이긴 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하니 꼭 가보길 추천한다고 했다. 루카는 대학 졸업 후 이탈리아에 위치한 마케팅 회사에서 2년 정도 일하고 나서 한동안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세상을 보고 싶고, 경험하고 싶고, 자신이 무엇을 제일 좋아하는지 깨닫기 위해 자신에게 1년 동안의 시간을 주기로 하고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블로그에 글도 쓰고 지낸다고 했다. (블로그 주소도 알려주었는데 이탈리아어로 되어있어서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 www.thetripmag.com/worldtour) 내가 그래도 현실적으로 경제적으로 한계가 있고 여행하는데 불편하지 않느냐고 하니 루카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인생은 한 번뿐이잖아. 무엇을 망설여?
나중에 나이가 든 후에 떠나는 여행과 지금 이 순간 젊을 때 하는 여행의 느낌은 다르다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돈이 없다는 건 핑계고, 젊음을 무기로 얼마든지 세계여행은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면 잠시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고, 닥치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긴다고 했다. 싱가포르에 오기 바로 전에 인도에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고아원에서 자원봉사를 했다고 한다. 유럽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아시아 사람들에 비해 사회로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전에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며 나에게 한마디를 넌지시 던진다.
너에게 가장 필요한 건 용기야.
아무도 너에게 여기에서 일만 하라고 한 적 없어.
그러면서 종이를 꺼내 이것저것 알려준다고 무엇인가를 적어서 주었다.
1) www.couchsurfing.org - 소파에서 무료로 숙소를 제공하는 호스트를 알아볼수 있는 카우치서핑사이트
루카는 나에게 이탈리아에 오면 꼭 자기한테 연락하라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나의 머릿속에 한동안 계속해서 머물렀다.
인생은 아름다워, 한 번뿐이니까
후회하지 말고 너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하길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