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나를 괴롭히지 말기
지난 일주일 내내 무리를 해서 그런지 결국 몸이 아파 골골대던 주말이었다.
그래도 주말에 초대받은 딸내미의 친구 생일 파티로 아이를 친구 집에 내려주고 왔다. 코로나 이후에 점점 일상생활 회복이 되면서 처음으로 친구 파티에 초대된 터라 아이도 기대를 많이 했다. 2시쯤에 내려주고 왔는데 몇 시쯤 다시 데리고 가면 좋을까요라고 친구 엄마에게 물어보니 모든 행사가 5시 반에 마무리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고 나서 각 시간 별로 리스트를 보여주시는데 깜짝 놀랐다.
꼬마 손님들 도착 전 티타임, 생일 케이크 커팅식, 마술사 공연, 풍선 공연, 심지어 아파트 단지 내 연못에서 물고기 밥 주기 세션까지 아주 세세하고 꼼꼼하게 스케줄 되어있었다. 전문 파티플래너 수준으로 짜인 스케줄을 보니, 2주 후로 다가올 우리 딸내미의 생일파티를 어떻게 기획해야 할까란 고민이 되었다. 이번 파티엔 반 친구 전체를 모두 초대했던 것 같은데, 우리는 그냥 가까운 친구 대여섯 명만 초대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고 뭐고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손님은 많이 초대하진 못해도 초라한 파티로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게 엄마 마음이라,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유니콘 생일 케이크와 핑크색 테마의 디저트 테이블을 주문했다. 작지만 기억에 남을 파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전체적인 테마에 대한 고민도 했다. 그리고 생일 주인공인 아이의 드레스도 알아보았다. 전부 만만치 않은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아이의 행복한 하루를 위해서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싶었다.
정신없이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나니, 이번 주 출장에서 발표하게 될 자료 마감도 바로 내일로 다가왔단 걸 깨닫고 벼락치기 자료 준비를 했다. 역시 일의 효율성과 집중력은 마감이 바로 코앞일 때 최고인 것 같다. 문제는 준비하는 와중에 스트레스를 받고 당이 떨어져서 자꾸만 군것질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과자를 끊어야 하는데 순식간에 비워진 과자봉지를 보는 순간 나의 의지력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구박하게 되었다. 맨날 이러니 살이 찌지란 생각에 한숨이 푹 나왔다. 그런데 때마침 연락 온 지인분께서 톡으로 보내주셨다.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지금 이미 열심히 잘 살고 계신 거예요.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해주세요."
갑자기 마음이 찡해졌다. 생각해보니 몸상태가 좋지 않지만, 나는 이미 최선을 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의 행복한 생일날을 위해 작지만 알찬 파티 준비를 했고, 시간이 빠듯한 가운데서도 회사일 마감시간을 넘기지 않기 위해 책임감 있게 주말 동안에도 바쁘게 일을 했다. 그깟 과자 봉지로 인해서 나를 몰아세우기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었다. 물론 매번 군것질을 이렇게 합리화시키면 안 되겠지만 아무튼 나에게 조금 너그러워져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체력 저질인 몸상태가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
좋은 엄마로서, 그리고 능력 있는 회사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이전에
이 모든 역할을 끝까지 책임감 있게 해내려는 나 스스로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너무 자책하지 말아야지. 나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