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했던 나날들
올 한 해에만 비행기를 거의 택시 타듯 수도 없이 탄 것 같다. 짐 싸는 것도, 공항으로 향하는 길도 너무나 익숙해졌다. 예전에는 공항에 도착하면 면세품 구경하느라 바빴으나, 지금은 대기 시간 동안에 앉아서 일할 수 있는 라운지가 훨씬 더 편하다. 코로나 시기엔 언제쯤이면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공항 가는 것이 그리웠지만 이제는 밥 먹듯이 자주 다니게 될 줄은 그땐 미처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자주 무대 위에 서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의견을 말하는 기회가 있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
이번 출장도 역시 스피커로써의 역할을 해야 했다. 대부분의 연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랬지만 이번에도 나를 제외한 모든 스피커가 창업자인 founder들이었다. 유명한 프로젝트들의 파운더인 만큼 생각하는 방식도 적극적이었다. 이렇게 연사의 기회가 있을 때면 매번 많이 배우게 된다. 무대 위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전까지 초긴장 모드로 준비를 해야 하는데 발표 전날까지 편두통에 시달린다. 마치 벼락치기로 시험을 치는 것 마냥 열심히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준비할 때는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렇게 도전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조금씩 내공이 단단해지는 것 같다. 과연 할 수 있을까를 까짓것 해보지 뭐- 로 생각하기까진 시간이 꽤 걸렸다. 내향적인 성향에다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연사라기보단 무대 위의 청중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이번 출장에서는 연사의 기회가 오프라인 무대 위에서도 있었지만 온라인상에서 방송하는 기회도 있었다. 동시접속자 수가 2만 명에 육박했다는 마케팅 팀원의 말을 듣고 나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20명 앞에서도 목소리를 떠는 내가, 과연 2만 명 앞에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아찔했다. 그래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분과 함께 진행하는 거였기에 마음을 비우고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그 외에도 밀려드는 수많은 미팅들을 소화하고 나니 목구멍이 따끔거리고 몸살 기운이 올라왔다. 의욕이 넘치더라도 체력이 모자라면 스케줄 소화가 불가능 하기에 천천히 속도조절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마지막 출장을 마무리했다. 이러다가 갑자기 12월에 또 출장 일정이 잡힐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연말 기간 동안에는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바쁘게 일정을 소화해내고 닥친 일들을 쳐내느라 급급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다. 이제는 무대 위에 서는 것이 너무 흔한 일이 되어버린 이상, 발표한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지금보다 양질의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도록 더 깊게 공부해보려고 한다. 뻔한 얘기를 늘어놓는 연사가 아니라, 논리 정연하면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차분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다.
그런의미에서 일저지르기 대마왕인 내가 시작한 공부 중인 과정이 있는데 숙제가 너무 많아서 출장 중에도 계속 페이퍼를 붙잡고 끙끙대야 했다. 옛날에 일과 공부를 병행하던 파트타임 대학원 시절이 생각났다. 이걸 내가 왜 시작했을까 골치가 아팠지만, 아마 나중에 분명 이렇게 노력한 시간들에 보람을 느끼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동안 궁금했었던 마켓 지식도 채워가면서, 그리고 흩어진 정보들을 정리하면서 내공을 차근차근 다져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