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가 바뀔 때 달라지는 것들
얼마 전 출강했던 수업에서 학생으로 만났던 분과 연말을 맞이해서 커피 챗을 하게 되었다.
한 글로벌 기업에서 임원으로 계신 싱가포르 여성분이었는데, 학생으로서 나의 수업에 참여해주시고 발표도 엄청 적극적으로 해주셨던 고마운 분이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수업에 적극적인 학생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제서야 알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글로벌 여성 리더로서 수상도 여러 번 하시고 커리어 멘토, 코치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시라고 했다. 두 아이들을 두고 있는 워킹맘이시면서도 현재 모습에 안주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싶어 하시고 자극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커리어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성취를 이루셨냐고, 그리고 수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었냐고 여쭤보니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사실 다음 달에 은퇴를 앞두고 있어요."
타인의 시선으로 보기엔 너무나 많은 성공을 이룬 커리어 우먼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노력의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는 얻는 것도 있었지만 잃는 것도 있었고, 특히 건강이 나빠진 경험 때문에 그 이후에 안식년을 가지면서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바로 외부에서 나를 바라보는 타이틀에 너무 큰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는 교훈이라고 했다. 직급이 올라가면서 그에 맞는 여러 가지 특별 대우와 혜택이 생겼지만, 그것에 너무 얽매이면 나중에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허무해진다는 것이다. 회사에서의 높은 직급이란 어쩌면 그저 화려한 옷에 불과한 것이지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니라고 했다.
"타이틀이 나에게 주어지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타이틀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해요."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나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과거에 얽매이기보다, 결국 나만의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해 보고 싶다고, 그래서 새로운 분야를 배우게 되었다고 하셨다. 은퇴를 계기로 인생에서 첫 번째 커리어 챕터가 막을 내리고 두 번째 장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그래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혁신에 대한 콘텐츠가 궁금하다고, 그것으로 두 번째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지난 수업 내용이 너무 좋았기에 심화과정이 있으면 내년에도 더 배워보고 싶다고 배움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이미 많은 것을 이루셨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하신 모습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접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많은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분야의 정상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기꺼이 내려놓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커리어를 리셋할수 있는 용기, 회사가 나에게 가치를 부여하길 기다리거나 기대하지 않고, 나만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개척해나가는 용기는 앞으로의 커리어를 디자인하는데도 고민해야 할 부분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