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그날은 출장으로 인해 비행기에서 내려 기나긴 입국심사 줄을 기다리느라 지쳐있던 순간이었다.
기본은 한 시간 걸리는 공항 입국심사를 기다리면서 폰으로 업무 이메일을 보고 있었는데 뉴욕에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작년에 컨퍼런스에서 만난 그녀는 한 다국적 글로벌 뷰티회사에서 디지털 이노베이션을 리드하는 상무님이었다. 얼마 전 그녀는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이번에 글로벌 디지털 리더십 서밋을 하는데 전 세계에서 디지털 이노베이션을 리드하는 C레벨들을 상대로 메타버스를 주제로 발표할 수 있는 전문가를 섭외하고 싶다고, 혹시 아시아에서 추천할 만한 사람이 없냐는 질문이었다. 그동안 만나왔던 많은 사람들을 추천할만한 후보로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가운데, 양쪽의 분야를 동시에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한 명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웹 3과 뷰티업계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연사를 찾고 있다면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기 한데...
제가 한번 해볼게요"
말을 하는 동안에도 속으로 지금 미친 거 아닌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너무 당돌한 건 아닌가란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200명 가까이 되는 임원들 앞에서 패널도 아니고 혼자서 키노트 발표를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내가 한때 드림 컴패니라고 생각하던 글로벌 뷰티 회사에서 말이다. 짧다면 짧지만, 하루하루의 미팅 일정이나 밀도로 보면 굉장히 진해서 길다고도 할 수 있을 웹 3 업계의 경험과 프리랜서로 활동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경험이라면 다른 연사들보다 좀 색다른 각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나에게 혹시 퍼블릭 스피킹의 경험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얼마 전 출연했던 방송 링크와 컨퍼런스 연사 링크들을 보냈다. 흑역사라고 생각했던 그 링크들을 활용할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모든 경험은 역시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녀는 검토 후에 연락 준다고 했고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지라 그냥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연락이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출장 와서 있는 다른 나라 공항에서 말이다. 그녀는 이번 주제의 연사는 나로 결정했다면서 다음 달에 일본에 있을 행사에 꼭 와달라고 부탁했다. 항공권과 숙박 비용은 전액 지원이 될 테니 그 부분은 걱정 말고 좋은 스피커로써 발표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락을 받고 나니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연사로서의 링크들을 보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반신 반의 하는 마음이 있었다. 완벽하지 않다고 느꼈던 나의 발표 링크들을 보고도 과연 스피커로 초대할까란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가 나를 추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다. 스스로를 멋진 사람으로 대우하고 기꺼이 기회를 주려고 할 때, 세상도 나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을 말이다. 스스로를 멋진 사람이라고 허락하지 않는다면, 내 앞을 스치는 기회조차 잡지 못하게 된다.
출장 와 있는 동안 정신없는 일정을 소화해 내면서도 새벽루틴을 놓치지 않았다. 나와의 미팅시간이 없다면 지금의 기회도 오지 않았을 것이기에,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고 발표 준비를 했다. MBA를 하던 시절, 졸업 후 도전하고 싶었던 회사가 바로 뷰티 회사였는데, 직원이 아닌 연사로서 방문하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또 다른 성장의 경험을 쌓기 위해 나에게 오는 하나하나의 기회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