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을 방지하기 위한 마음가짐
프로이직러로서 이직은 그저 루틴이거늘, 이번에도 여전히 새로운 시작을 하기 전, 백수생활의 허전함이 남겨져있다. 새로운 명함을 쥐고 낯선 책상에 앉을 때마다 마음 한켠에 자리하던 공백은 늘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어느덧 떠나는 날이 되면, 남겨진 사람들은 말해주곤 했다.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자”,
“넌 잘 될 거야.”
짧지만 진심이 묻어 있는 그 말들이, 퇴사 후에도 내 마음에 따뜻하게 오래 남았다. 이번 송별 디너 자리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보통은 감정이 북받쳐 올라 한두 번쯤 울컥했을 텐데, 이번에는 그저 잔잔했다. 아마도 업계가 좁기도 하거니와 언젠가 다시 마주치게 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인연이라는 것은 ‘끝남’이 아니라, 단지 ‘형태를 달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지 않아도, 누군가는 여전히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수많은 이직 끝에 알게 되었으니까.
좋은 사람들과의 작별인사 후, 마지막 출근을 마친 날, 스스로에게 조용한 선언을 하나 내렸다.
“더하지 말고, 덜하기.”
그동안의 나는 무엇이든 더하려고만 했다. 더 많은 일, 더 좋은 성과, 더 빠른 속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나를 따라다녔고, 심지어 휴식조차도 ‘잘 쉬어야 한다’는 부담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습관의 영향 때문일까, 백수 1일차의 아침이 밝았을 때, 문득 텅빈 캘린더에서 다시 불안함이 슬그머니 올라오는 것을 깨달았다. 친한 동료들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조용한 아침이 적응되지 않네, 기분이 이상해" 매일 아침 울리던 사내 메신저랑 이메일 함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것이 적응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동료들은 이제는 푹 쉬라고, 쉬어도 된다고 했다. 대화 끝에 내가 또다시 ‘투두 리스트’를 만들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책 읽기, 방 정리, 디톡스, 가족과 시간 보내기, 미뤄둔 원고 쓰기…
정작 시간을 얻었는데, 나는 또 그 시간을 조급하게 채우려 하고 있었다. 텅 빈 공간을 견디지 못해 이것저것 가져다 넣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나는 오랫동안 가득 찬 상태에만 익숙해져 있었구나. 하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더하는 삶이 아니라 덜어내는 삶이었다.
불안도 덜어내고, 조급함도 덜어내고, 욕심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했다. 계획을 세우기보다, 가끔은 하루를 느긋하게 흘려보내는 것도 괜찮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내 삶에 꼭 필요한 일부라는 걸 인정하는 용기.
이 선택을 결심하기까지 수많은 고민이 있었다. 분명히 떠나야 할 이유가 있었지만, 막상 발걸음을 떼고 나니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를 후회의 그림자가 나를 슬쩍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마음의 정체는 결국 ‘불안’이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 익숙함을 내려놓고 새로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망설임.
그런 감정들 또한 삶의 일부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퇴사 후의 시간은, 어쩌면 ‘회복’이라는 이름의 시간이다. 빠르게만 흘러가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나를 다시 나로 만들어가는 시간. 속도를 늦추고,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
삶은 늘 바쁘게 움직이지만, 가끔은 멈춰 서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멈춤은, 내 안에 숨어 있던 여유를 다시 꺼내어 보여준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도, 때로는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그 단순하고 조용한 진실을, 나는 지금 퇴사 후의 삶을 통해 배워가는 중이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더하지 말고, 덜하기.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꼭 필요한 삶의 태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