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올해도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
정신없이 서울 출장을 마치고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싱가포르 핀테크 위크가 이어졌고, 다시 짐을 꾸려 베트남까지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한 달이 훌쩍 흘러 있었다. 여행 가방에 남은 공기마저 서로 다른 도시의 온도를 품고 있을 만큼, 정말 쉼 없이 움직였던 시간이었다.
서울 출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독자들과 처음 마주했던 그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넓은 주제를 모두 담아내기엔 어쩐지 아쉬움도 있었지만, 감사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호흡하며, 서로의 시선을 교환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벅찼다. 많이 떨렸지만 그래도 밤새 준비한 내용을 최대한 열심히 전달해보았다. 서점 여러 곳에서 우연히 내 책을 발견했을 때 느껴졌던 묘한 감정, 설렘과 감사와 믿기지 않음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그 느낌은 지금도 마음 한켠에 고이 남아 있다.
가을이 깊어가던 선선한 날씨 속에서, 공저자와 나란히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작년 초부터 묵묵히 공부해왔던 내용을 마침내 꺼내어 세상에 내보일 수 있었던 순간은 정말 꿈만 같았다. 금융사에서 온 강연 제안도 무사히 마무리했고, 최대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잘 전달되었길 바랐다. 그런데 책을 세상에 내놓고 난 지금도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어느새 책 속의 내용은 또 하나의 ‘과거’가 되어 있었다. 이 업계가 가진 속도를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또한 감사한 기회로 언론사 인터뷰도 하게 되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렇게 소개될수 있어서 다행이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단 생각도 든다.
https://www.dailian.co.kr/news/view/1576096/?sc=Naver
https://n.news.naver.com/article/014/0005440516?sid=105
싱가포르 핀테크 위크에서는 회사 본사에서 사장님도 방문하셨다. 입사 전, 그분이 인터뷰나 무대에서 스피치하는 영상을 수없이 돌려보곤 했는데, 카리스마와 따뜻함이 공존하는 모습이 늘 인상 깊었다. 그런 분을 실제로 눈앞에서 마주하니 마치 연예인을 본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그분이 아이 셋을 둔 워킹맘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마음의 결이 금세 가까워졌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꿈이 그 순간 또렷해졌다.
베트남 출장에서는 삶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동료가 있었다. 공항에서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프랑스 노인 부부에게 자청해 통역을 도와주는 모습이었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 아무도 모를 친절이었지만 그 동료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시간을 내어 도움을 건넸다. 그 모습을 보며, 세상은 이렇게 작은 선의로 조금씩 따뜻해지는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일에 성실한 사람은 많지만, 태도까지 배울 만한 사람을 곁에 두고 함께 일하는 것은 참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회사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무거운 쌀과 생필품을 포장해 어르신들 댁까지 일일이 배달하는 일이었는데, 오랜만에 팔이며 다리가 욱신거렸지만, 누군가를 위해 나의 시간을 내고, 그분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울림을 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했던 봉사활동이었는데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엄청나게 뿌듯했다. 사실 출장으로 체력이 바닥나서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가보자’ 하고 답했던 나 자신을 마음속에서 조용히 칭찬해 주었다.
이렇게 11월을 빈틈없이 채워 넣고 나니, 남은 한 달의 2025년도 조금 더 단단하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새로움 속에서 배우고, 기회 앞에서는 주저하지 않고 ‘예스’라고 말하며, 또 다른 나로 성장하는 시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기억이 흩어지기 전에 이렇게라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지 못하더라도, 의미 있는 순간을 남기는 일은 분명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