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의 삶을 항상 동경해왔다.
드라마에서 가끔 그려지는, 빳빳하게 다려진 정장에 여성스러우면서 우아한 스카치를 두르고, 높은 힐을 신고, 당당하고 걸음으로 전 세계 출장을 다니고, 외국 바이어들 앞에서 유창한 외국어를 구사하며 딜을 따내고, 고속승진의 탄탄대로를 걷는, 어디서나 인정받는 능력 있고 완벽한 커리어우먼의 삶.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가 샀던 책들 중 상당수도 내가 닮고 싶은 열정 있는 사람들의 스토리가 담긴 에세이 식의 자기 계발서였다. 어떤 이는 그런 자기 계발서 백날 읽어봐야 자기 자랑같은 뻔한 얘기만 쓰여있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나에게는 저마다 다른 교훈을 주는 멋진 인생들이 담긴 드라마였고, 해외에서 커리어를 쌓는 기간 동안에 나도 모르게 나태해지는 것 같을 때마다 반성을 하게 만드는 신선한 자극제이기도 했다.
보통 내가 읽었던 커리어우먼들의 에세이는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에 책을 낸 작가들이 많았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나의 스토리를 책으로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20대의 나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갔는데, 이제 시간이 흘러 그때 읽었던 화려한 이야기의 주인공의 나이 때가 막상 가까워지다 보니, 난 왠지 별로 이룬 게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오늘처럼 하루 종일 일에 쩌든 날, 그리고 퇴근 후 육아에 기가 다 빨릴 것 같은, 소위 말해 현타가 오는 날에는 나는 매일 신경 쓰이던 다이어트 식단이고 뭐고, 매일 쓰던 글쓰기고 뭐고 다 귀찮아지는, 그래서 그냥 소파에 널브러져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간절하게 따고 싶어 지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메일을 보았다. 작가의 제안이라고 온 메일.
어떤 대학생분이 보낸 메일이었는데, 읽다가 중간에 이 문장에서 마음이 쿵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해외에서의 커리어우먼의 모습과 육아, 끊임없는 자기 계발까지 여러모로 닮고 싶은 면을 가지고 계세요.
오늘 하루도 제가 동경하고 있는 멋지고 당당한 여자의 모습으로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열심히 그동안의 기억을 담아내려고 했던 노력들이 보람 있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사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매일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해보고서, 그동안의 해외생활 기억들을 떠올려보며 글로 옮겨보는 건 쉽지 않았다. 말랑말랑 감성의 전형적인 브런치 느낌의 글과는 거리가 있는,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나의 문체가 플랫폼의 성격과는 거리가 있지 않나 라는 생각에 자신감도 점점 떨어지던 참이었다.
하지만 해외생활의 기억들을 그냥 허공으로 날려 보내고 싶지 않아서 꾸준히 쓴 글이었는데, 누군가가 글을 읽고 이런 반응을 남겨주신다는 것이 행복하기도 하고, 더 큰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문득 몇 년 전 내가 정말 좋아하고 닮고 싶어 하던, 같은 업계에서 일하던 언니가 생각났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던 유명한 회사에서 승승장구하시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돌연 모든 것을 뒤로 한채 귀국을 결심하셨다. 지금은 귀국 후, 창업에 성공하셔서 너무 유명해진 분이 되었다.
내가 언니를 닮고 싶어 했던 이유는 단지 유명한 회사 배경이 아니라 언니 자체만으로도 반짝반짝하는 열정 있는 분이었고, 그런 열정을 담아 언니만의 브랜드를 만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언니랑 얘기하다 보면 언니는 나에게 항상 그런 얘기를 했었다.
다른 사람의 기준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이미 잘하고 있는 것에 집중해보세요.
자꾸만 부족한 모습을 채찍질하고, 개선해야 하는 단점만 보지 말고, 나만이 할수 있는 가치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장점에 집중하라는 언니의 말이 생각난다. 무뚝뚝한 글이지만, 나만의 진정성을 담아서 꾸준히 글을 쓰려고 했던 노력이 오늘따라 보람 있게 느껴졌다.
위에 말한 언니처럼, 아직도 나에게는 닮고 싶은 멋진 사람들이 많다.
오늘처럼 하루 종일 시달린 날에 해야할 일도 그냥 제껴야지 라고 나태해지려고 하는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누군가가 닮고 싶어 하는 모습이라고 하는 말을 부끄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만의 장점에 집중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큰 영감을 준 대학생분의 메일에 감사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