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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최고의 인재만 뽑습니다

회사 브랜드의 자부심

by 커리어 아티스트

첫 직장을 갔을 때 나는 우리 회사에 대한 애사심으로 넘쳤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고 소개할 때 물어보는 질문인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어디에서 일해요 라면서 회사 이름을 말할 때마다 뿌듯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다녔던 회사들은 글로벌 대기업들이었고, 업계에서 항상 선두자리에 있는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회사들이었다.


그중에서 유난히 어렵게 입사했던 회사가 있었다. 다른 회사들은 면접이 많아봐야 3-4번이었는데 이곳은 무려 12번의 면접을 보고 나서야 합격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싱가포르 지점, 홍콩 지점, 런던 지사, 뉴욕 본사에 있던 그 부서의 모든 매니저들과의 면접을 봐야 했고, 한 단계씩 통과하면서 결과를 기다릴 때마다 피가 마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면접을 볼 때마다 고급스럽고 으리으리한 로비에서 대기하면서, 로비를 지나가는 다양한 나라 출신 직원들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보는데 점점 더 이 곳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면접 때마다 만났던 매니저들도 다들 능력 있고 멋진 사람들 같아서 꼭 함께 일하고 싶었다. 몇 개월에 거쳐서 드디어 합격 뉴스를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합격 후 신입 오리엔테이션을 했을 때 우리를 환영하며 반겨주던 인사부 담당자가 했던 말은 나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다.


We only hire the best and the brightest.
우리는 최고의 인재만을, 그리고 제일 뛰어난 분들만 뽑습니다



이곳은 유난히도 인재를 중요하게 여기는 회사인지라, 직원 교육을 굉장히 정기적으로 했다. 교육 때마다 직원들에게 얼마나 우리가 뛰어난 인재인지, 그리고 회사가 인재들에게 어떻게 투자하고 있는지에 대해 강조했다. 그리고 회사 내 임원들과의 정기적인 미팅의 자리도 마련하면서, 직원들의 동기부여와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다. 나는 인재교육에도 지속적으로 신경을 쓰면서, 직원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게 하는 문화가 좋았다.

료 중에서 일본 출신이 있었는데, 그는 회사에 대한 강한 자부심으로 로고가 적힌 사원증 목걸이, 머그컵, 다이어리, 우산 등등 회사 굿즈들을 전부 구매하기도 했다. 링크드인에서는 우리 회사를 퇴사한 직원들도 타이틀에는 전에 이 회사 출신이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써두는 분도 꽤 많았다.


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업무상으로도 그랬지만, 사람들로부터 정말 많이 배웠다. 조용히 혼자서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회의시간에 본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필요하다는 점도 배웠고, 아무리 개개인이 뛰어나더라도, 조직생활에서는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이곳에서 배웠다. 간단한 예로, 팀에서 성과가 있을 때면, 메일을 쓸 때 I 가 아닌 We로 문장을 시작했다.


그 이후 더 좋은 기회가 생겨서 아쉽게도 이직을 하게 되었지만, 그때 다녔던 회사의 기억은 아직도 나에게 자랑스럽게 남아있다. 아직도 예전에 같은 팀이었던 동료들과도 꾸준히 연락을 하고 지낸다. 심지어 퇴사한 직원에게도, alumni라고 하여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들을 발송하고 회사소식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해주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을 중요시하고, 네트워크를 끊임없이 유지하는 회사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좋은 회사에서 많은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경력이 10년이 넘어가게 되면서, 회사 브랜드가 곧 나는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고 하더라도 회사 이름을 지웠을 때, 나의 이름 석 자의 가치가 없다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특히 이직을 하게 되면 회사 브랜드 이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그동안 해온 일이 앞으로 하게 될 일이랑 얼마나 연관이 있는지, 얼마만큼의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지, 회사 브랜드보다는 내가 하고 있는 "직무"가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이제는 처음 사람들을 만나고 소개를 할 때, 회사 이름보다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직무를 먼저 얘기하게 된다. 회사 브랜드만큼 나 개인의 브랜드도 못지않게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거쳐온 회사들, 그리고 지금 있는 회사들도 모두 자랑스러운 브랜드이긴 하지만, 나의 이름 석자의 브랜드로도 못지않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직무능력을 쌓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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