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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에게 주어진 옷을 입는다는 것

자신감과 자만심의 사이에서

by 커리어 아티스트

나는 항상 겸손은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외국에서 살면서 겸손보다는 본인의 가치를 최대한 매력적으로 어필하는 자기 PR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어로 나를 표현함에 있어서는 유난히도 남의 시선이 의식되었다. 혹시라도 나대거나 설치는 사람으로 비칠까 봐 항상 내가 쓴 글이나 말에 대해 신경이 쓰였다.


아마도 주변에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걸까.

그런 사람들에 비교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서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름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대단하다고 칭찬하면

"내가 무슨, 나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들도 많아"라고 나 자신을 깎아내리려고 했다.

평상시에 남들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때도 자랑만 일삼거나 재수 없게 보이진 않을까 끊임없이 마음 한구석에서 필터링을 했다.


요즘 밀레니얼 세대들은 자기 홍보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아니, 사실 자기 PR이란 요즘 모든 연령층으로 확대되는 트렌드인 듯하다.

아무래도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가 다양해져서 그런 걸까, 모두들 퍼스널 브랜딩에 열심이다.


코로나 시기 동안에 강의나 세미나를 들으면서 알게 된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이력에 대해 그리고 스킬에 대해 다양한 소셜미디어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으로 적극적으로 본인을 알리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런데 별로 거만하거나 잘난 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스토리에서 매력을 느끼고 배울 점을 찾게 된다.


최근에 엄마의 퍼스널 브랜딩과 관련해서 1-1 컨설팅을 하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컨설턴트였던 분께서 하신 말씀이 며칠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그동안 너무 잘해오셨는데, 일단 본인에게 주어진 옷부터 입으세요,
앞에 근사한 옷을 두고도 계속 입을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이네요


안 그래도 평소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나에게 그분의 칭찬은 따뜻한 격려와 위로처럼 느껴졌다.


언제부터 자기 검열을 심하게 해왔을까 돌이켜보니, 직장생활 초창기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싱가포르에서 사는 외국 주재원들이 많이 모였던 어느 네트워킹 파티에서였다. 그러다가 한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직장생활 얘기가 나오고, 연봉 얘기가 나왔다. 똑같이 타지에 나와서 일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엄청난 액수의 연봉을 받는 그 친구를 보자, 문득 나의 현실과 비교가 되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으리으리한 펜트하우스와, 방하나 렌트해서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자, 초라해지고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 만남 이후에 스스로가 괜히 이유 없이 실망스럽단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직장인들의 이직 기준이 되기도 하는 연봉, 원초적인 단어로 '돈'이다.

한때는 돈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면서부터 돈이 사람의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하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서울에 살던 친한 친구에게 이런 나의 초라한 마음을 담은 솔직한 메일을 보냈었는데,

그녀가 나에게 보내준 답장을 읽고 한동안 멍해졌었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많은 위로가 되는 것 같아 이곳에도 남겨본다.




"너의 기분은 충분히 감이 잡힌다. 초라해 지는 내 모습, 요런 거

그런 주변이 들을 볼 때마다 초라해지고 쪼그라들고 그럴 수 있겠지만,

그래도. 매번 그렇게 느끼는 건 너무 우리의 인생이 가혹하지 않니?


한 예로, 반대의 사람들과도 좀 어울려보면,

또 다른 어떤 무리들은 분명 너를 너무 부러워하고 있을 거야. 해외 취업에, 외사에.


너 스스로 조금은 더 너를 치켜세울 필요도 있어


그 먼 곳에서 가족 하나 없는 곳에 나가서 일하는데 네가 뭐하러 남이랑 비교된다고 쪼그라들어.

그건 너무 삶이 외로워지잖아.

그러니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가끔씩이라도 좀 더 콧대 높여서 살아볼 필요는 있다고 봐.


음, 있잖아, 네가 싱가포르에 가서 여태까지 네가 나한테 단 한 번도.

네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나에게 말해준 적이 없었어


그럼 안되는 거야.


돈이면 돈. 일이면 일. 사람이면 사람. 어떤 거 하나라도 당당하게 너를 자랑한 적이 없어.

난 그런 너의 모습을 볼 태마다 안타깝고 걱정되고 그래.


여태껏, 그리고 지금 너 주변에 얼마나 멋지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은진 모르지만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며, 자꾸만 위축되고 비교되고 작아지는 네가 되는진 모르겠지만

그건 그들 인생이지, 비교대상이 아닌 거잖아.


롤모델이 아니고, 멘토가 아니고, 그냥 네가 거기서 알게 된 지인들인 거야.


누가 뭐라 한들, 내 주변에 얼마나 잘난 이들이 있든,

내 눈에 비친 너는 정말이지 멋진 곳에서 더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면서 잘 나갈 수 있는 아이가

빛 낼 생각조차 못 내고 있는 게 너무너무 안타깝다, 조금은 자신감 가질 필요 있어.


요즘엔 그렇다더라.. 투덜이 스머프보다, 차라리 허세 부리는 스머프가 나은 세상이라고.


잡일 야근 야근 야근의 회사생활이면 좀 어때.

넌 더 당당해지면 되는 거고 잘 나가면 되는 거야.


우리 좀 있음 30이다. 30전엔, 정말로,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도 완전 파이팅! 을 외치는 삶을 찾아야지


당장 돈이 빠듯하고, 직업을 놓을 수 없고, 그런 건 나중에 네가 새로운 가정을 꾸려서 너만을 의지하며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그때 걱정해도 되는 거 같아.


내 눈에 넌, 본인이 멋쟁이인지 모르고 있는 멋쟁이 친구니까 ^^


남몰래 싱가포르에서 흘리는 눈물도 있을 거고

일거수일투족 쫑알거릴만한 친구가 없어서 더 외롭다고 느껴질 때도 있을 거고


좀 더 여유롭지 못한 삶이라 돈 때문에 짜증 날 때도 있겠지만,

조금은 더 콧대 높고 당당해지는 네가 되길 바라며~

초라해지는 모습은 노노~ 버려버려~ 냅다 버려!




돌이켜보니 그때 친구가 해준 말도 지금 내가 컨설팅하면서 들었던 이야기와 비슷했다.

내가 그래도 될까,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이제 그만 내려놓고,


내 앞에 놓인 근사한 옷을 당당하게 입고,

그동안 해왔던 나만의 스토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온 스토리를 가진 사람은,

나 밖에 없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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