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현지학교의 추억

전 베트남 미국대사님과의 저녁식사

by 커리어 아티스트

베트남의 빠른 경제성장에 대한 주제로 전 베트남 미국대사님이며 현재 싱가포르 구글러이신 분과 함께하는 프라이빗 저녁 식사 이벤트에 참석했다.


베트남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었지만 베트남어를 잘하시는 백인 미국인 대사님이었다고 하시길래 급 관심이 생겨서 참여했던 이벤트였다. 그분께서는 베트남 하노이에 2년, 호치민에 4년 동안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셨다고 했다. 그분은 베트남어를 하는 한국인을 싱가포르에서 본건 처음이라고 하셨고 나 역시 베트남어를 하는 미국 사람을 이곳에서 처음 봤다고 서로 놀랐다. 우리는 베트남에 있는 이곳저곳을 이야기하며 그곳에서의 기억을 공유하다 보니 나의 어린 시절 베트남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베트남은 나에게 특별한 나라다. 나는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살았던 경험이 있다. 아빠의 사업으로 가게 된 호치민은 나에게 첫 외국이자 낯선 나라, 그리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나라였다. 처음 비행기를 내리자마자 맡아지던 오토바이의 매연냄새와 후덥지근한 동남아 특유의 더운 공기의 느낌이 베트남의 첫인상이었다. 그때만 해도 개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외국인들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었다. 오토바이 물결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말이다. 그 당시 또래 한국 친구들은 거의 영어를 사용하는 인터내셔널 스쿨을 다녔고 나는 부모님의 추천으로 베트남 현지 학교를 다녔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베트남에 왔으니 이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하시며 현지 학교에 가는 것을 적극 추천하셨다.


나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지만 베트남어를 하나도 할 줄 몰랐기에 랭귀지 스쿨이라는 이름 아래 1학년으로 우선 입학했다.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베트남 알파벳부터 배우던 시절, 얼마나 빨리 내 또래들과 함께 같은 반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도 했지만, 그다음 해에 4학년, 그리고 다음엔 6학년 이렇게 월반하는 식으로 학년을 맞춰갔다. 영어가 아닌 베트남어를 배우는 것은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6가지 성조가 있는 베트남어는 성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에 발음이 중요했다.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언어를 공부한다는 개념보다는 베트남어의 환경에 계속 노출이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흡수했던 것 같고 더군다나 나이가 아직 어려서 빨리 배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주입식 위주의 수업방식으로 인해 교과서를 계속 달달 암기해야 했기에 오토바이 택시로 등교하면서 계속 뒷좌석에서 책을 펴고 숙제를 하느라 중얼중얼 암기하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건 사회주의 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 머플러를 매야하는 교복이었다.


베트남 현지 학교를 다니면서 성조가 여러 가지라서 발음이 화려한(?) 베트남어에 비해 어딘지 모르게 있어 보이는 발음의 영어를 사용하는 인터내셔널 스쿨에 다니는 또래 한국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때 배웠던 베트남어는 훗날 한국에 돌아온 이후 나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들을 안겨주었다. 대학생 시절 오히려 전공이었던 영어보다 베트남어 통번역 일의 기회가 훨씬 더 많았다. 전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어 통역은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도 했고 나에겐 어렵지 않았기에 이런저런 행사들에 통역으로 참여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고등학교 3년 내내 베트남어를 쓰지 않았기에 다 잊어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베트남 사람들을 만나서 통역할 때면 예전 기억이 고스란히 다시 생각났다. 나에게 있어서 베트남어는 새로운 기회들에 대한 문을 열어주던 열쇠나 마찬가지였다.




전 미국대사님인 그분은 베트남의 오토바이 물결을 예로 들면서 베트남 사람들은 다들 오토바이 운전을 할 때 앞이나 옆을 보지 거의 뒤를 안 돌아본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현재 앞만 보며 질주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베트남 경제와 닮아있다고 하시며 이런 점이 너무 매력 있는 나라라고 하셨다. 기회가 많이 있는 나라이기에 나중에 베트남에 다시 돌아가실 생각도 있다고 하시길래 나 역시 공감한다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분이 베트남이 계셨던 98년도에 나도 똑같이 베트남에 있었는데 당시 나는 중학생, 그분은 대사님이었다니.


그때 내가 베트남 현지 학교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이런 기회들이 주어졌을까, 베트남어로 이렇게 대화하는 기회가 싱가포르에서 종종 생겨서 신기하다. 앞으로도 계속 베트남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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