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했다! 두둥.
경력정체감 번아웃은 약도 없더라
2020 AUGUST
더 심각한 것은 아무 준비없이 퇴사를 했다. 사실 환승 이직 준비를 꾸준히 해오기는 했지만 중간에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론적으로 아무 준비없이 퇴사를 맞이한 꼴이 됐다.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왜 퇴사했는지 기록해 보고자 한다.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모를 구직활동 기간에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나의 결심에 흔들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1. 10년간 비서/서비스 직으로 살아왔다.
숫자 10이 주는 의미는 참 크다. 한 분야에 10년을 몸 담았다는 것은 전문가라고 칭해도 된다는 뜻이다. 올 해가 나에게는 그랬다. 2010년 귀국해서 10년간 비서/서비스 직으로 살아왔고,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2. 비서/non-비서 갈림길에 서다.
10년간 비서/서비스 직으로 살아봤으니 남은 10년은 다른 업무를 더 늦게 전에 배워볼까 vs. 앞으로 쭉 비서로 살다 커리어 인생을 마감할까: 이 두 갈림길에서 고민을 6개월 간 했다. 아무래도 성장에 목마른 나에게는 전자쪽에 좀 더 마음이 컸다.
3. 지금 조직에서는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10년간 몸 담았던 조직 중 가장 오랜 기간 근속한 조직이었다. 정말 좋은 회사였고 앞으로도 좋은 회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난 이유는, 내 미래의 커리어를 담보하고 더 버티고 있기에는 나의 시간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1번의 이유처럼 무언가의 변화가 필요했는데 이 조직은 너무도 안정적이었고 나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4. 극심한 경력정체감을 느끼고 있었다.
비서로 살아가다 보면 나의 일은 없고 뒤치닥 거리, 남의 일만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가 있다. 나도 분명 직장인인데 이상하게 지인 모임만 나가면 왠지 작아지는 것 같고, 무한히 자신들의 상사를 씹어대는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 난 상사를 보좌하고 있는 위치 상 독특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버리곤 했다.
갓 들어온 신입인턴은 일 다운 일, 자신의 일을 인계받아 한 달, 한 분기, 반기, 1년을 프로답게 경력을 만들어 성장하고 있는데, 나는 10년 내내 남의 일만 하고 있다는 생각, 나만의 전문적인 일은 없고, 비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처럼 치부되고,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늘 고통스럽게 했다.
5. 번아웃
지쳤다. 이 한 마디로 모든 이유를 종합할 수 있으리라. 특히 2020년 상반기가 너무 심했다. 갑자기 늘어난 업무량이었지만 승진 인사는 없었고 연봉도 평범하게 인상됐다. 고작 타이틀 하나 더 추가되어 명함을 새로 팠을 뿐... 금전적, 명예적 보상 없이 일을 더 받아 하는 것은 demotivation의 불을 지펴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 한 번 없이 모든 일을 근무시간 안에 소화했다는 나 자신의 능력에 다시 한 번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홀로 먹는 점심, 동료들과 소소한 커피챗, 잠깐의 여유와 휴식과 맞바꾼 것이었다는 슬픈 현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나의 시간은 소중하기에. 늦었을 때가 빠른 것이라고 실행에 옮겼다. 월급의 노예가 되어 안정적으로 직장을 구한 후 퇴사할 수도 있었지만,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의미있는 일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비서는 10년 정도 했으니 이제는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앞으로 10년은 내가 하고 싶었던 분야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 이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20년 하반기는 속도를 좀 늦춰 숨 돌리며 이 도전을 지속하지 않을까 싶다.
이 세상의 모든 현직비서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비서를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 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겪어왔던 모든 시행착오들을 아낌없이 나누고 싶다.
그것이 지금 당장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일이다.
셀프모티베이터 하얀언니
(사진출처 getty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