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에 대한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시리즈
아무도 정해진 미래는 없어.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거야.
- 영화 [빽 투더 퓨처] 브라운 박사의 대사 중 -
모든 처음의 순간은 설렘 이상의 그 무엇이다. 첫 교육, 첫 심부름, 첫 등교, 첫 학기, 첫 직장. 저마다 다른 양의 불편함과 두려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또한 익숙해지기 전까지의 낯섦의 시간을 견뎌내어야 한다. 그러나 용기가 든든하게 차오를 때 두려움은 금방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한다. 중학생 시절, '난생처음'인 영화 '빽 투 더 퓨처'를 관람하고자 개봉 하루 전날부터 대한극장 앞에서 밤을 새웠다.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것은 엇박자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미래가 아닌 과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 85년 미국에서 개봉했지만 우리나라에선 수입 불허 이유(근친상간)로 2년 후에 개봉되었다는 것, 극장 앞에서 모기를 쫓아가며 밤을 새웠지만 전혀 힘들거나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다. 최근까지도 주인공이 과거나 미래로의 '시간 여행'이란 소재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볼 때마다 가끔 소환되는 추억이 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의 틀 안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시간을 소재로 한 작품은 '또 한 번이 기회, 다시는 후회하지 않겠다'는 다짐뿐만 아니라 '후회하는 오늘을 만들지 말라'는 교훈까지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가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는 말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어쩌면 미래에는 현실적으로 시간을 넘나들며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교훈을 얻어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게 될런지도.
"'언젠가'를 꿈꾸는 삶은 사기를 떨어뜨린다. 날마다 바쁘게 지내면 시간이 흐릿하게 스쳐 지나간다 모호한 상태에서 시간을 늦추고 단지 할 목록의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기 위해 질주하는 대신 즐기고 기억하고 순간을 실제로 경험해야 한다."
- 제이크냅 · 존 제라츠키 [메이크 타임] 중 -
트렌드는 결핍이 만들어 낸다고 한다. 현재 우리의 가장 큰 결핍은 '시간'이라 생각한다. 빠름이 미덕(빨리빨리)인 문화가 낳은 '분초사회'에서 직장인들은 반차를 넘어 '반반차', '반반반차'를 사용하는 등 시간을 촘촘한 모듈로 구성해 효율을 높이기 원한다. 또한,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방학 계획서는 단순히 경험만 하기에 시간이 한정적이고 부족하다고 생각해 분초 계획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누구나 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른 시간이 된다. 그리스어로 시간을 뜻하는 두 가지 단어로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있다. 크로노스는 모두에게 똑같이 흘러가는 물리적, 절대적 시간을 뜻하며, 카이로스는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즉, 상대적인 시간 또는 의식적으로 보낸 시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도 의미 있는 새 출발의 시기(졸업 · 입학)엔 지인들로부터 시계를 선물 받기도 한다. '항상 좋은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는 의미로 시간은 성공과 잘 살기 위한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시간을 절약과 관리의 대상으로 극대화 추구가 높아질수록 풍족함 이면의 빈곤을 경험하게 된다. 좋은 시간은 균형 있는 속도와 의미 있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스페인의 어느 마을에는 아주 오래된 관습이 하나 있다. 그 마을 사람들은 15세 이후가 되면 메모장 하나를 목에 걸고 기쁜 일이 있거나 삶에서 진한 감동을 느낄 때마다 이 메모장의 왼쪽에는 기뻤던 일을, 오른쪽에는 그 기쁨이 지속되었던 기간을 적는다. 그리고 누군가 죽으면 고인의 메모장을 열어 고인의 기쁨이 지속되었던 오른쪽 시간을 더해서 고인의 비문에 적는 것이 전통이다. (예를 들어 '000, 향년 70세로 눈을 감다'라고 쓰는 대신 '000, 8년 6개월 13일을 살다'라는 식으로 적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쁨이 지속되었던 그 시간만이 유일하게, 진정으로 살아 있는 시간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비에게는 징그러운 애벌레 시절이 있고 펭귄에게는 초라한 몰골의 털갈이 시절이 있다. 바다 밑에서 몇 첫 년 동안 단잠을 잔 조개만이 고귀한 진주를 품는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지나간 잘못과 후회를 시간의 탓으로 돌린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시침과 분침이 충실한 목격자가 되어 당신의 수고와 노력을 기록해 줄 것이다. (중략)
추악하고 실패할 때도 시간은 조용히 죄를 뒤집어쓰며, 선량함과 성장을 위해서는 빛나는 훈장을 걸어준다."
- 뤼후이 [시간이 너를 증명한다] 중 -
매일 반복되는 24시간 속에서 어느 특별한 시간, 그 기억에 의지하여 남은 시간을 살기도 하고, 지나간 후에야 그 시간의 특별함을 깨닫고 평생을 후회하며 살기도 한다. 상대적이고 질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Kairos)'는 그리스어로 '기회(Chance)'이기도 하다. 신 카이로스의 형상은 앞머리는 무성한데 뒷머리는 민머리이고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고 한다. 마주했을 때 쉽게 무성한 앞머리를 얼른 잡아 내 것으로 할 수 있지만, 지나간 다음에는 낚아채려고 해도 잡히는 뒷머리가 없어 잡을 수가 없고 날개를 이용해 바로 날아가 버린다고 한다.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기회는 다시 잡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신은 공평하며, 누구에게나 공평한 수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처럼 스티브 잡스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이 일을 할 것인지를 매일 자문했다고 한다. 김연아는 과거 tvN 유퀴즈에 출현해 선수 시절 계속되는 시합, 경기 그렇게 일상을 살다 보니 부상으로 인한 슬럼프 극복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겨내려고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어릴 때는 화도 내고 울고 했는데, 이제는 '언젠가는 지나가겠지'하고 내버려 뒀어요. 괜찮아질걸 아니까.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매달렸어요.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샌가 슬럼프가 지나가 있었구요." 우리는 '사력'을 다하여 '필사적'으로 사는 것만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이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함께.
살면서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쳐 후회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버리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자. 하완 작가도 그의 저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에서 말했다. 열정도 닳는다고. 함부로 쓰다 보면 정말 써야 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니 목숨을 아끼지 않고 쓰는 '사력'이나 아껴서 뺏기는 열정 대신, 아쉬움과 미련을 남기지 말고 그 자체로 빛을 갖는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살다 보면 새로운 시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선물 받을지도 모른다. 마치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