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개발 직군을 하는 이유
내 직장 경력은 만 3년하고 10개월쯤 됐다. 이 시간을 돌아보면 커리어를 처음 시작했던 1년 차 때는 무엇을 해도 재미있었다. 새로운 파트너사를 만나는 일, 계약을 수주하고 돈을 벌어오는 일, 하다못해 동료들과 야근하는 재미도 있었던 거 같다. 그렇게 만 3년이 넘어갈 무렵, 내가 속한 팀에서 내가 제일 오래된 팀원이 되었다. 그즈음부터는 회사에서 그 어떤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새로울 게 없어서 그랬을까. 그렇게 이직을 결심했다.
두 번째 회사는 참 좋았다. 활발한 동료들, 그리 버겁지 않은 업무, 쾌적한 사무실까지. 사업 개발 혹은 세일즈 업무 특성상 약간의 매출 압박이 있었지만, 그것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9시 출근, 6시 퇴근이 가능한 회사였고 매주 이틀씩 재택을 하기도 했다. 회사 생활이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봤지만, 내게 주어진 영역은 한정적이었다. 옆 자리 동료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날도 있었다.
“우리 이것만 해도 되나요?”
이 질문이 옆자리 동료를 넘어 내 자신에게 던지게 되는 날이 많아지면서 또 자연스럽게 이직을 결심했다.
그렇게 지금의 회사에서 지금의 일을 만났다. 하던 일은 어느 정도 유사하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포인트가 있었다. 가지고 있는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상품기획부터 내가 해서, 내가 직접 팔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습 3개월 동안을 정말 머리를 매일 쥐어뜯었다. 새로운 상품 기획을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입사하기 전 설레기도 했다. 그때 설레던 나는 온데간데 없다.
막상 입사 후에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려고 보니, 우리가 가진 프로덕트는 꽤 제한이 많았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도 않았다. 제한된 자원, 제한된 시간 내에 새로운 시장을 찾아 그들에게 맞는 상품을 기획해야 했다. 그 상품을 팔아서 결과적으로 매출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머리를 쥐어뜯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이디어는 좀처럼 샘솟지 않았고, 책을 아무리 읽어봐도 우리 회사와 같은 상황의 예시는 나오지 않았다. 입사 두 달 차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 다시 돌아갈까?’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수습까지만 버텨보자고 다짐했다. 내가 이 회사를 그리고 이 일을 선택한 이유를 되새겼다. 나는 내가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고, 나의 영역을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해서 이 일을 택했다. 그리고 내가 직접 기획한 일이 이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결정적으로 그런 일을 내가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수습 종료까지 남은 한 달, 이 시간을 버티고 나면 이 일과 내가 정말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주 5일간 매일 야근했다. 모르는 일이 생기면 책을 읽거나 논문을 읽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잘하는 영역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조금 더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시장, 그리고 우리 프로덕트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를 겪고 있는 시장이 내가 찾는 시장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싸맨 결과, 스타트업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우리 회사는 누구나 쉽게 PPT나 배너 등 다양한 콘텐츠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덕트를 가지고 있었고, 초기 스타트업은 늘 디자인 리소스 부족에 시달린다. 동시에 스타트업 보육 기관에서는 매년 일정 비용을 투입해 기업들의 사업계획서를 리디자인 해주곤 한다.
나는 이틀 만에 유관 부서와 협의해 가격 정책 및 상품 기획을 수립했고, 하루만에 제안서를 완성했다. 그리고 또다시 하루만에 고객군을 리스트업한 뒤 2주 동안 집중적인 외부 영업을 실행했다. 그 결과, 아웃바운드를 실행한 지 22일째가 되던 날 1,500만 원이라는 첫 매출이 발생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당일 아침에 가능성이 높았던 고객사에서 거절 전화를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안될 거라고 생각했던 딜이었다. 그렇게 기대 없이 받았던 전화에서 우리와 함께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고 싶다는 고객사의 목소리가 거짓말인 줄 알았다.
놀랍게도 첫 매출이 발생했던 주에 나의 수습 기간은 종료됐다. 동시에 생각했다.
‘아, 내가 이래서 이 일을 했었지.’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일을 한다. 생계를 위해서 혹은 사회적인 명예를 위해서, 자아실현을 위해서 각자의 일을 해낸다. 나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이 쾌감으로 일한다고 다시 한 번 느꼈다. 내가 만들어낸 기획이 누군가에게 가치를 주고, 그 가치가 결국 회사의 이익이 되는 과정을 이끌어가는 것. 그 과정에서 나의 역량을 한 번 더 느끼고, 효능감을 느낀다. 덤으로, 반복적이고 쉬운 일보다는 어렵고 고된 일 속에서 작은 성취를 만들어내는 일에 나는 또 재미를 느낀다.
아마 당분간 스타트업 시장을 공략해서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면, 또 재미가 없어질 것이다. 그러면 또 나의 새로운 재미를 찾아 새로운 시장을 탐색해 보면 된다. 사업 개발 일은 그렇게 새로운 시장을 끊임없이 탐색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흥미가 사라지고, 언제든 새로운 흥미를 찾아 나서도 되는 일이기에 나는 또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회사 생활을 해나간다.
“어디 재미있는 일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