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술자리에 앉을 때, 나는 데이터 앞에 앉았다

일하는 여성 주니어로서 겪은 일화

by 커리어걸즈

지금의 대기업이라 불리는 전통적인 기업에서는 ‘접대 영업’이 주된 영업 방식이던 시절이 있었다.


고객사 키맨(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의 비위를 맞추면서 계약을 성사시키키 위해 고객사 키맨의 비위를 맞추려고 고급 양주를 대접하기도 하고, 주말에 같이 골프 라운딩을 나가기도 했다. 그런 접대를 잘하는 영업 사원이야말로 “진정한 세일즈맨”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2025년, 지금의 영업은 다르다. 아직도 접대 영업이 남아있는 산업이 존재하지만, 대다수의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규모에서 더 이상 ‘접대’는 주류 영업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약간 촌스러운 영업 방식처럼 취급받기도 한다. 요즘 세일즈는 주로 ‘데이터’로 말한다. 아무리 고급 양주와 선물을 가져다줘도 우리 회사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데이터로 말할 수 없다면 그 영업은 성공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3년 차까지는 세일즈와 사업 개발을 하는 여성 주니어로서 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태도, 꼼꼼하게 정리해 낸 데이터들로 나만의 세일즈 스킬들을 차분히 쌓아 나가고 있다고 느꼈다. 실무만 열심히 하는 주니어 단계를 지나 시니어가 될 준비를 하던 4년 차, 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여기던 4년 차에 난 처음으로 ‘여성 주니어’의 한계를 맛봤다.


현재 소속된 회사에서 프랜차이즈 업계를 대상으로 외부 영업을 시작하려던 시기. 우리 팀은 타겟 고객군으로 프랜차이즈 산업을 정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프랜차이즈 본사에 무작정 찾아가기도 하고, CS 번호로 전화를 걸어 회사 소개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한 프랜차이즈 업계의 키맨을 알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중, 예전에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프랜차이즈 대상 서비스를 창업한 작은 스타트업을 알게 됐다. 아는 VC를 통해 그 스타트업의 대표님을 소개받았고, 나와 이사님은 바로 그 스타트업 대표님과 미팅을 했다. 해당 미팅에서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었던 프랜차이즈 생태계에 대해 알게 됐다. 프랜차이즈 산업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인맥 위주로 굴러가는지, 그 인맥 사이에 들어가려면 얼마나 많은 술자리와 골프 영업이 필요한지도 그날 알게 됐다.


그날부로 이사님은 나를 프랜차이즈 영업 담당에서 제외시켰다. 매주 정기적으로 생기는 지독한 술자리와 주말에도 이어지는 골프와 테니스, 그리고 조기축구 모임까지. 30대 초반의 여성인 내가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영업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나 대신 30대 중반의 남자 직원을 해당 산업 담당자로 배정했고, 남자인 이사님도 그 과정에 동참했다.

다른 산업을 맡게 되었을 때 내 기분은 그다지 나쁘지도 않았다. 4-50대 남성 대표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그 영업 과정을 이겨낼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발굴한 파트너사가 소개해주는 다양한 인맥과 술자리들은 고스란히 내 동료에게 이관됐다.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여성 주니어’로 일하는 나를 봤고, 내가 해내기 어려운 영업을 봤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데이터로 승부하는 ‘요즘 세일즈’를 믿는다. 동시에 일부 산업에 남아있는 ‘접대 영업’이 권력처럼 남아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벽 앞에서 나의 영역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는 또 다른 이야기다. 나를 가로막는 장벽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라고 외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장벽을 만났다고 해서 그 앞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술잔을 기울이며 친분을 쌓아갈 때, 나는 친분을 이겨낼 만한 데이터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여성 주니어의 한계를 느꼈을 때, 씁쓸해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한계에 부딪혔다고 좌절하는 것이 아닌, 그 한계를 넘으려는 노력만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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