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제가 아는 전문가분께서
최대한 빨리 서류를 작성해서 최대한 많은 기업에
제출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얼마전 취업 커뮤니티에서 제게 채팅창으로 이런 질문을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분에게 "좋은 전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답변을 드렸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최대한 많은 기업에 서류를 제출하는 것은 당신의 커리어를 비효율적으로 가져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직장인들이라면 대부분 직관적으로 아는 사실입니다. 특히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직장인들이 이런 식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다가 어느 순간 지독한 회의감에 사로잡힙니다. (자신이 선택한 기업에, 자신이 선택한 일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떤 전문가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문가는 당신이라는 '사람'에 관심이 없고 당신이 '취업'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게 좋은 것이 아니냐구요?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이 글에서 설명드려보겠습니다.
당신은 정말 최대한 많은
기업에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아마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취준생이던 시절, 그리고 심지어 직장인이 된 이후 이직을 하던 시절에도 최대한 많은 기업에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가정(hypothesis)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즉, 내가 취업에 성공만하면, 내가 이직에 성공만하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는 1차원적인 가정에 기반하는 것이죠.
하지만 당신은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당신이 평생의 소원으로 생각하던 기업으로의 이직을 성공할지라도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스스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 정리를 하지 않고 사회라는 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취업을 한 뒤에 나에 대해서 고민을 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이 가장 여유로운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단언컨대, 당신이 직장인이 되는 순간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거의 없게 될 것입니다. 애초에 돈을 내고 교육을 들을 '권리'를 지닌 사람과, 돈을 받고 일을 수행해야 할 '책임'을 지닌 사람 중 누가 더 여유로울까요?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신이 아무런 준비없이, 그러니까 당신이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자소서와 서류를 복사붙여넣기 신공을 통해서 뿌린다면, 당신은 단기적으로는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다시 말해서, '취업'이라는 단기적 관점이 아니라 '커리어'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최대한 많은 기업에 무분별하게 지원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선, 최대한 많은 기업에 지원하는 1일 1지원 전략이 좋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신이 평범한 멘탈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1일 1지원을 통해서 합격으로 나아가는 길을 버틸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 커리어너스가 지니고 있는 통계치와, 취업 플랫폼에서 설문조사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대부분의 취준생들의 서류합격률은 10~15% 정도입니다. 1일 1지원 전략으로 50일 동안 50곳을 지원했다고 가정하면 43번 정도의 탈락 소식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에서 가장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시기인 취준생이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릴 수 있는 숫자가 아닙니다.
당신이 석가모니나 예수님의 심장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이상, 10번 정도 탈락 소식을 듣는다면 당신 스스로가 얼마나 쓸모없는 사람이었는지를 떠올리며 자책할 것입니다. 그리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합격 후기들을 읽으며 스스로를 갈수록 비참한 구렁텅이로 내몰 확률이 높아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설사 당신이 운이 좋게 서류합격을 한 이후에 면접장에 간다고 할지라도, 면접장에서 당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의 언변에 위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당신이 43번 정도를 떨어질 필요없이, 5번만 떨어지고 그 다음 6번째만에 붙을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경우, 아마 당신은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여기며 그곳에 입사를 결정하겠죠.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서 터지기 시작합니다. 1일 1지원 전략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당신이 당신을 스스로를 이해하지 않은 채, 아무 회사나 얻어걸리면 가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최대한 많은 기업에 지원해서, 당신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생각해보자구요.
당신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해주는 부모님과 애인과 친구들의 든든한 응원을 기반으로 당신은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리라고 다짐합니다. 이제 남은 일은 머지않아 TV나 유튜브에 나오는 전문가들처럼 훌륭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남은 것은 회사에 올인하자는 생각뿐일 것이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입사한 회사의 인간들이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전혀 다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를 들어, 당신은 일만 하고 싶은데, 당신이 입사한 회사의 동료들을 일만 하는 당신을 따돌릴 수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진짜 일은 업무는 대충 처리하고, 프로젝트에서 남는 비용을 가지고 '영업을 한다'라는 명목하에 술을 먹으러 다니거나 유흥업소에 가는 것이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요?
너무 극단적인 예시 같으신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두 가지 회사 중 어느 곳을 선택할 것인가요?
1) A기업
연봉은 업계 최고이며 워라밸도 훌륭하다. 그런데 하는 일이 매일 고객들이 싫어하는 스팸 메일을 작성하거나, 아무런 의미없는 형식적인 보고서를 매일 작성하고 수정하고 검토하는 일이다.
2) B기업
연봉은 업계 중위권 수준이며 워라밸도 형편없다. 그런데 하는 일이 고객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일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 내가 하는 일은 고객을 설득하고, 팀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등과 같은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이다.
당신이 '돈' 또는 '조화' 또는 '균형'이라는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아마 A기업을 선택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저와 같이 '성장',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B기업을 선호할 것이구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최대한 많은 기업에 지원하는 방법으로는,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기업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A 기업을 원하는데도 불구하고, 1일 1지원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B 기업에 들어가게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당신이 B 기업을 원하는데도 불구하고 A 기업에 들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제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아니, 팀장님. 그런데 제가 가치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회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스스로의 가치를 알고 있다면, 면접장에서 회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당신이 원하는 업무 환경은 어떠한지, 당신이 원하는 회사 문화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함으로써 상대방과 내가 어울릴 것인지를 조율해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B와 같은 회사에서 일해왔고, 또 그런 회사에 일하고 싶기 때문에, A와 같은 업무들을 하는 회사라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저는 미련없이 면접을 끝내고 나왔습니다. 심지어 저는 면접장에서 회사가 나를 채용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전에 아래와 같은 멘트를 내뱉은 적도 있습니다.
정말 훌륭하네요. 하지만 지금 말씀해주신 내용을 들어보니, 제가 원하는 방향성과는 조금 다른 것 같네요. 귀하신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귀한 시간 더 낭비시키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굉장히 오만방자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이것은 건방진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시간적·금전적 비용을 절약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의 커리어를 생산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세입니다. (물론 신입이 이런 말을 한다면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가능성이 높슶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신입이라면 원하는 방향성이 무엇인데, 지금 당신이 파악한 기업의 방향성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는 것이 현명한 거절 전략입니다.)
저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신이 자소서를 작성하며 스스로가 누군지를 이해하고,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토대로 당신이 만족할만한 기업을 선택해서 집중하고, 면접에서 기업과 대화를 하면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일지를 선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제가 입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단기적인 관점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 입각해서 내 스스로 만족할 만한 회사를 찾기 위해서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만족·실현시켜줄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일 1지원을 말리지 않습니다. 갑자기???
당신이 취업 전문가의 말에 따라서 그 전략이 옳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면 저는 당신의 의견을 지지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10년 전이었다면 당신과 똑같이 1일 1지원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죠.
설령 지금의 제가 10년 전의 과거의 나에게 돌아가서 1일 1지원을 하지 말라고 말려도, 과거의 저였다면 10년 후의 미래의 저를 무시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10년 전의 저는 일단 하루 빨리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내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을 다 떠나서, 저는 애초에 성향이 남들이 그 길은 잘못된 길이라고 할지라도 제가 직접 몸으로 부딪쳐서 다치고 깨지고 몸이 으스러지고 눈물을 흘려봐야지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미래의 제가 아무리 설득한다고 할지라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어떻게 커리어를
준비하든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가식처럼 들린다면 할 수 없지만, 이것은 저의 진심입니다. 저는 그저 당신의 삶과 커리어를 생산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당신이 생각해보지 못한 다른 관점을 하나 제공해줄 수 있을 뿐입니다.
A안만 알고서 A안을 선택하는 것과, A, B, C안이라는 3가지 옵션을 알고서 A안을 선택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똑같은 결과를 가져다줄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다른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입니다.
애시당초초 당신의 삶과 커리어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는 결국 온전히 당신의 몫이며, 당신의 책임이기 때문에 제가 당신의 선택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관점에서, 정부관료나 언론들이나 신입으로 지원하는 학생들은 중고신입이 많아지는 것을 비판하지만, 중고신입이 많아지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사회경험을 조금이라도 빨리 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길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 때문에, 커리어너스의 컨설팅 서비스를 신청하는 80%의 취준생이 중고신입입니다. 남들이 모두 선망하는 대기업에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몸을 부딪쳐서 깨달은 것이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모델 하나가 있습니다.
현대 금융 시스템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함으로써 2009년 금융위기를 선제적으로 예측해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만든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는 모델로, 우리가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좋은 상태가 아니라 나쁜 상태에 머물러야 하며, 이런 상태에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빠른 성장의 길이라는 것을 설명해주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져가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성장해나갈 것을 추천드립니다.
① 만약 당신이 10년 전의 나처럼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빠르게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안티프래질을 신봉하라. 1일 1지원을 하는 것이 당신에게 맞는 방법이다.
만약 당신이 제가 이 글을 통해서 주장한 내용을 한번 쯤 고민해볼만하다고 느끼신다면 아래와 같이 성장해나갈 것을 추천드립니다.
② 만약 당신이 지금의 나처럼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 무의식 글쓰기를 진행하라. 그리고 당신의 가치와 부합하는 기업을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매우 빈번하게 나의 글들이 기-승-전-무의식 글쓰기로 끝나는데... 이것은 무의식 글쓰기가 결국 나 자신을 알기 위한 가장 강력한 솔루션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전세계적인 신경과학자들은 이 사실에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면 이 영상을 참조해도 좋고 아래 칼럼을 참조해도 좋습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최대한 많은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항상 좋은 전략은 아니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1. 최대한 많은 기업에 지원하는 것이 옳은가?
2. 1일 1지원이 좋은 전략이 아닌 이유
3. 1일 1지원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일 1지원을 말리지는 않는다
5. 이런 관점에서, 중고신입이 많아지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2가지 방향성을 제시해드렸습니다.
① 빠르게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1일 1지원 전략이 좋은 방법이다
②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무의식 글쓰기를 진행하고 선택과 집중이 좋은 방법이다
애초에 당신이라는 사람이 살아온 경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선호하는 스타일, 가지고 있는 프레임은 이 세상에서 공유한 것이기 때문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답은 당신이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당신에게 맞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현명하게 의사결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
p.s. 얼마전 50대 대기업 임원분께서 자신이 스카웃을 받았는데 4가지 옵션 중 제게 어떤 커리어를 선택해야 할지를 고민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무님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가요?" 그분은 5분동안 고민하시다니 답변을 못하셨고, 저는 그분에게 무의식 글쓰기를 권유하였습니다.
p.p.s. 전쟁에서 어떻게든 승리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를 하더라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는 역사적 교훈을 떠올려보시면 더 현명한 의사결정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p.p.s. 얼마 전 안티프래질을 학생에게 설명하다가 "그거 노래 제목 아니에요?"라고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아저씨가 되어간다는 것을 느끼는데.... 안티프래질이라는 용어는 이미 2010년대에 정립된 모델입니다. 《안티프래질》이라는 책이 2012년에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