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변신》을 읽다가 내 커리어를 이해했다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된 근본적인 이유

by 강동현
'아, 세상에. 나는 어쩌면 이렇게 고달픈 직업을 택했을까. 날이면 날마다 여행을 다녀야 하는 신세.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는 회사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경우보다 훨씬 더 큰데, 거기다 고단한 여행의 짐까지 더 지고 있으니 말이야. 연결 기차편을 놓칠까 늘 걱정이고, 식사는 불규칙한 데다 형편없고, 상대가 계속 바뀌니 지속적이고 따뜻한 인간관계는 생각할 수도 없어. 악마라도 나와서 이 모든 걸 쓸어가 버렸으면!'
― 프란츠 카프카, 《변신》 중




소설 속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이 독백을 읽으며 나는 깊은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한탄이 과거 영업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나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운 좋게 호주에서 방문판매 영업사원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낯선 땅에서 영어 실력을 키우고 비즈니스의 생생한 현장을 배우기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당시 나는 내가 당연히 '외향인(E)'이라고 믿었다. 중학생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무리 속에 섞여 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외향적인 가면을 쓰고 살았기 때문이다.



호주의 가정집 문을 두드리며 쉴 새 없이 입을 놀려야 하는 방문판매직은 내게 매일이 전쟁터였다. 하지만 당시엔 내가 힘든 이유가 '실력이 부족해서'라고만 생각했다.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며 더 많은 사람을 만나러 다녔다. 훗날 '무의식 글쓰기'를 통해 나의 선천적인 기질이 지독한 내향인(I)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나는 내 영혼을 깎아 먹으며 영업을 뛰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서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팀장님, 지난번엔 MBTI로 진로를 정하지 말라면서요? 지금 하시는 말씀은 모순 아닌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모순이 아니다. MBTI는 내가 '무엇(What)'을 할지 결정해 주는 예언서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내가 그 일을 '어떻게(How)' 느끼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훌륭한 진단서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MBTI로 내 직업의 한계를 그어서는 안 되지만, 내가 왜 이 일을 하며 에너지가 고갈되는지 그 '이유'를 찾는 도구로는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커리어 컨설팅을 하고 무의식 글쓰기로 타인의 관점을 분석하는 일을 하다 보니, 소설 속 그레고르 잠자가 어떤 성향이었을지 궁금해졌다. 그는 왜 그토록 자신의 직업을 저주했을까? 소설 속 단서들을 MBTI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그는 나와 같은 내향인(I)일 뿐만 아니라, F(감정형)와 J(판단형) 성향이 강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연결 기차편을 놓칠까 늘 걱정'하고 '불규칙한 식사'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계획이 어그러지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난무하는 영업직의 특성은 체계와 안정을 중시하는 J 성향에게는 지옥과 같다.



그는 '지속적이고 따뜻한 인간관계'를 열망한다. 영업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철저히 비즈니스적이고 일회적이다. 깊은 정서적 유대를 중시하는 F 성향에게 매번 바뀌는 얕은 관계는 정서적 고갈을 불러온다.



반면, 나는 T(사고형)와 P(인식형)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영업사원 시절 불규칙한 식사나 계획되지 않은 돌발 상황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따뜻한 인간관계가 결여된 비즈니스적 만남 역시 내게는 불만 요소가 아니었다. 내가 정말 힘들었던 건 오로지 '내향인'으로서 쏟아내야 했던 과도한 에너지 소모 때문이었다.

내가 MBTI라는 도구로 소설 속 주인공의 성격을 추론해 보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이 일을 얼마나 '오래,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레고르 잠자가 결국 벌레로 변해버린 것은, 어쩌면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버텨내다 영혼이 문드러진 결과가 아니었을까. 육체는 꾸역꾸역 일을 하러 나갔지만, 그의 본성은 비명을 지르며 인간임을 포기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100년 전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수많은 직장인이 겪고 있는 지독한 '번아웃(Burnout)'의 민낯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번아웃은 단순히 몸이 피곤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지탱하던 '인간성'이 마모되어 가는 과정이다. 내 본연의 성향과 맞지 않는 환경에서 오로지 책임감이라는 채찍으로 자신을 몰아세울 때, 우리 안의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다 못해 자아를 태워버린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거울 속에는 내가 알던 '나'는 사라지고, 그저 생존을 위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낯선 존재만 남게 된다. 소설 속 잠자가 벌레로 변했듯, 현대의 우리 역시 번아웃을 통해 무기력하고 딱딱한 껍질 속에 갇힌 존재로 변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당신의 커리어는 어떤가? 당신이 선택한 일은 당신의 본성과 결을 같이 하고 있는가? 어떤 부분이 당신을 신나게 만드는가? 어떤 지점이 당신의 에너지를 바닥나게 하는가?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을 실력의 문제로 치부하며 자신을 몰아세우지 마라. 물고기가 나무를 타지 못한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성향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성격을 아는 것을 넘어, 당신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가 될 것이다.




▶ 그레고르 잠자처럼 번아웃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이해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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