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아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당신의 자아도 100개다
자아라는 복잡한 지도를 그릴 때, 우리는 보통 두 개의 커다란 대륙을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내가 '수동적 프레임'이라 부르는, 이른바 '사회적 자아'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Carl Jung)은 이를 '가면'이라는 뜻의 '페르소나(Persona)'라고 정의했다. 타인과 사회의 요구에 맞춰 우리가 입게 되는 일종의 유니폼 같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능동적 프레임'이라 일컫는 '나의 진짜 자아'다. 융의 모델로 비유하자면 '자기(Self)'와 맥락이 닿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융의 '자기'는 수동적 프레임과 능동적 프레임 모두를 통합하는 더 큰 개념이지만, 여기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나의 본질'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겠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딱한 심리학 이론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학창 시절 한 번쯤 주고받았던 '롤링 페이퍼'가 어떻게 나의 사회적 자아를 파악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는지에 대한 통찰이다.
아들이 롤링 페이퍼를 가지고 와서 몰래 봤는데,
제가 모르는 아들의 모습이 많이 있더라구요.
집에서는 활발한데, 밖에서는 조용하고 소심한 것 같더라구요.
제 아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어떤 게 진짜 아들의 모습인지 모르겠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아들은 지극히 정상이다. 오히려 부모님과 있을 때와 친구들과 있을 때의 모습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면, 그것이 오히려 심리적으로는 더 위험한 신호일 수 있다.
어머니가 놓친 점은 롤링 페이퍼의 각기 다른 조각들을 하나의 전체로 연결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롤링 페이퍼의 진정한 가치는 '내가 아는 나'는 하나뿐이지만, '남들이 보는 나'는 수십 가지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는 데 있다. 내가 느끼는 나와 타인이 느끼는 나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는 과정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지도를 훨씬 더 넓고 입체적으로 그리게 해준다.
우리는 흔히 '일관성'이 정답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과 다르게 나를 판단하는 타인을 보면 서운함을 느끼거나, 심지어 그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넌 나를 잘 몰라"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당신의 모습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생존 전략이자 유연함의 증거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인간은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수만큼 사회적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만큼 당신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페르소나가 여러 개라는 사실에 혼란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적 자아'는 다수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라. 롤링 페이퍼 같은 도구는 당신을 비난하는 화살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다면체를 비추는 여러 대의 카메라와 같다.
타인의 시선에만 매몰되는 것도 문제지만,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 역시 자기 이해의 반쪽을 잃는 일이다. 타인이 바라보는 당신의 모습들을 기꺼이 수집하라. "아, 저 사람에게 나는 저런 색깔로 비치는구나"라고 가볍게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진짜 나(Self)'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당신은 단 하나의 정답으로 규정될 수 없는, 아주 다채롭고 풍요로운 존재다. 그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 Persona와 Self를 구문하고 통합시키는 과학적 방법론, 《자기이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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