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이해는 유년 시절이 80%를 차지한다

by 강동현

심리학이라는 프레임이 없는 사람은 선뜻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한 인간의 8할은 유년 시절이라는 토양 위에서 형성된다. 지금 당신이 내리는 결정, 타인을 대하는 태도, 심지어 무심코 내뱉는 말투조차 아주 오래전 심어진 씨앗의 결과물일 확률이 높다. 결국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의 가장 연약하고도 순수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 당시의 풍경을 복기하는 일과 같다.



이 문장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한 번 상상해 보자. 거친 기계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공장'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아이와, 매주 고요한 기도와 찬송이 흐르는 '교회'에서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완전히 같은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을까?



공장의 풍경 속에서 자란 아이는 효율과 생산성이라는 공기를 마시며 성장한다. 구조화된 작업 환경과 명확한 결과물은 아이에게 실용주의적 관점을 선물한다. 자원과 시간을 아끼는 것이 미덕임을 몸소 배우고, 과정보다는 눈에 보이는 성취를 중시하는 어른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란 아이는 공동체적 가치를 무엇보다 먼저 배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 헌신, 도덕적 원칙이 대화의 주를 이루는 환경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강점을 보인다.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삶의 본질적인 의미와 목적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때로는 세상의 효율보다 개인의 양심을 앞세우기도 한다.



내 주변에는 이 가설을 증명하는 생생한 사례들이 있다. 목사의 아들로 자란 한 친구는 조직 내의 사소한 부조리조차 견디지 못해 전도유망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현재 그는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며 "적어도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그에게는 연봉의 액수보다 자신의 도덕적 궤적을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한 가치였던 셈이다.




또 다른 지인은 어린 시절 지방에서 공장을 운영하시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는 유독 약속 시간을 어기는 것에 민감한데, 나는 그의 그런 성향이 '시간은 곧 비용'이라는 공장 특유의 생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그는 현장에서 본사로 발령받기 위해 수년간 노력했지만, 막상 사무실 책상 앞에 앉게 된 지금은 그 노력을 후회하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이 공간이 너무 갑갑해서 견딜 수 없어." 그의 몸은 여전히 현장의 생동감과 명확한 움직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유년 시절의 환경이 현재의 내 모습을 100% 결정짓는 결정론적 장치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절의 환경이 지금의 나에게 '무조건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과거라는 지도 위에 현재라는 길을 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잠시 펜을 들고 유년 시절의 풍경을 떠올리며 '무의식 글쓰기'를 시작해 보길 권한다. 그때 내가 보았던 것, 들었던 것, 그리고 느꼈던 결핍과 충만함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바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마주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 당신의 뿌리를 발견하기 위한, 《자기이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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