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부터 가끔씩 머릿속을 스치던 주제가 하나 있다. 이번에 다시 그 화두를 꺼내 보게 된 이유는 아주 사소한 단어의 차이 때문이다. 바로 어떤 사람은 연말 모임을 ‘송년회’라고 부르는 반면, 어떤 사람은 ‘망년회’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송년회(送年會)의 ‘송(送)’은 ‘보낼 송’ 자다. 여기에는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며 정중히 보내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망년회(忘年會)의 ‘망(忘)’은 ‘잊을 망’ 자다. 즉, 한 해 동안 있었던 괴로움이나 고통 같은 것들을 깨끗이 잊어버리자는 목적으로 모이는 자리인 셈이다.
비슷한 자리, 비슷한 술잔, 비슷한 웃음소리. 하지만 그 자리에 붙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전혀 다른 정서가 형성된다. 송년회가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고 매듭짓는 느낌이라면, 망년회는 그 시간을 지워버리고 가볍게 털어내려는 기색이 짙다.
처음에는 그저 단어 선택의 취향 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차이가 단순한 어휘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오히려 각자가 자신의 과거를 다루는 방식, 더 나아가 삶을 해석하는 태도와 깊이 맞닿아 있었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주관적인 편향일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게 송년회를 제안했던 친구들은 언제나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이었다. 부정적인 사건이 있었더라도 그것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아 갈무리하고, 내년에는 다시 한번 ‘으쌰으쌰’ 해보자는 에너지가 강했다. 이들은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보다는 다시 다가올 미래에 초점을 두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망년회라는 단어를 즐겨 쓰던 친구들은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 고통을 잊어버리자는 태도가 강했다. 한 해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토로하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것을 잊고 즐기기를 원했다. 과거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지만, 현재의 즐거움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조금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우리는 왜 어떤 기억은 붙잡고, 어떤 기억은 지워버리려 할까. 심리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과거를 그대로 저장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사건 자체를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을 구성한다. 같은 일을 겪어도 누군가는 그것을 성장의 계기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지워버리고 싶은 고통으로 남긴다.
이 차이는 결국 두 가지 전략으로 나뉜다. 하나는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의 일부로 통합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을 차단하고 기억을 멀리 밀어내는 방식이다. 전자는 자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가는 태도에 가깝고, 후자는 당장의 고통을 견디기 위한 방어에 가깝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이 둘의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망년은 과거를 삭제하려는 태도에 가깝고, 송년은 과거를 통합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삭제하려 한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꾸어 우리의 삶 어딘가에 남는다. 반대로 통합된 기억은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경험으로 자리 잡아, 오히려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구조가 된다.
결국 우리는 연말을 보내는 방식 속에서, 단순히 한 해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나는 나의 과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지워버릴 것인가, 아니면 끌어안을 것인가.
어쩌면 정답은 둘 중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기억은 잊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어떤 기억은 붙잡아야만 내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일이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단어 하나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단어는 종종, 우리가 아직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자신의 태도를 먼저 드러낸다.
당신은 그동안 송년회와 망년회 중 어떤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해왔는가.
그리고 올해 당신은,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아니면 잊어버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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