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확신 편향의 덫을 주의하라
* 이 글은 당신이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을 수 있음을 설명하는 칼럼입니다. 이 글을 통해 진실로 똑똑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를 고민해보세요.
우리 인간의 뇌는 상당히 멍청한 면이 많습니다.
후광 효과를 설명했던 칼럼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범죄자라고 할지라도 잘생기거나 이쁘게 생겼다면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질 않나, 모호성 효과를 설명했던 칼럼처럼, 취업은 정답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정답이 확실한 스펙만 집중하는 편향(bias)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편향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후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불리우는 모델입니다. 사후확신 편향은 말 그대로, 어떤 일의 결과를 알고 나면 처음부터 그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믿는 경향을 말합니다.
나는 네가 그럴 줄 알고 있었어.
내가 그럴 줄 알았지.
그럼 그렇지. 나는 이미 예상했어.
혹시 주변인이나 스스로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적 없으신가요?
모르긴 몰라도, 한 번 쯤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으실 겁니다. 물론 당신이 정말 그럴 줄 알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1류 사기꾼과 같은 측면이 있어서, 당신이 그럴 줄 몰랐는데도 그럴줄 알았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사후확신 편향이라고 불리우는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후확신 편향을 제거하고, 훨씬 더 똑똑해질 수 있을지, 그리고 훨씬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겠습니다.
사후확신 편향이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떤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그 일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뇌의 오류를 말합니다.
사후확신 편향은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개념입니다.
뒷북치기라는 문구, 지나고 나서 보는 눈은 항상 정확한 편이다라는 반어적인 문장, 준비된 전문가라는 비꼬는 말, 결정론으로 몰아가기(Creeping Determinism)라는 철학적 모델은 모두 사후확신 편향의 개념을 담고 있는 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후확신 편향 실험은 카네기말렌 도핵의 바루크 피쇼프 교수가 1975년 내놓은 심리학 연구1로부터 시작합니다.
피쇼프 교수는 1972년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이 곧 있을 베이징 방문에서 어떤 외교 성과를 거둘지 예상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당시는 미국이 중국을 외교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상태였고, 닉슨 대통령은 강력한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에 모두가 부정적으로 상황을 점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실험참가자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닉슨은 긍정적인 외교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냉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긴장 완화'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성과를 거두었죠. 피쇼프 교수는 닉슨 대통령이 귀국한 이후에 같은 실험참가자들에게 자신이 예상했던 성과 내용을 떠올려보게 했습니다. 그 결과, 실험참가자들은 실제보다 자신이 더 성과를 잘 예상한 것처럼 답변했습니다.
원어로 아래와 같이 말이죠.
I knew it would happen.
이런 이유로, 피쇼프 교수의 논문 제목도 'I knew it would happen'입니다. ���
그렇다면 도대체 사후 확신 편향은 왜 일어날까요?
우리가 이런 행동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예상외로 우리 인간이 매우 이성적이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안가시죠?
그러니까, 우리는 매우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과거에는 A라는 정보만 있었던 반면, 현재 B라는 새로운 정보가 등장한 이후에, B라는 새로운 정보로 과거의 사실을 재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이걸 제가 가지고 있는 통계학적 모델을 빌려온다면, 베이지안 사고(Bayesian Thinking)라고 합니다.
베이지안 사고란 이런 것입니다.
당신하고 친구가 보드게임을 하며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게임이 끝나가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중이라고 상상해보자. 이때 친구가 재미삼아 내기를 제안한다. 주사위를 한 번 굴려 숫자 '6'이 나오면 당신이 이기는 내기. 확률은 1/6, 그러니까 16%다. 이제 당신 친구가 주사위를 굴린 다음 재빨리 손바닥으로 가리고 살짝 들여다보더니 한마디한다. "이 정도는 말해줄 수 있지. 짝수야." 이 새로운 정보를 반영하면 당신의 확률은 1/3, 33%로 바뀐다. 당신이 내기에 얼마나 걸지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가 장난스럽게 덧붙인다. "그리고 4는 아니야" 이제 당신의 확률은 1/2, 50%로 다시 바뀌었다. 이 단순한 과정 중에, 당신은 베이지안 분석을 수행한 것이다. 각각의 새로운 정보는 기존 확률에 영향을 준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후확신 편향을 갖는 이유는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자동적으로 우리가 정보를 재구성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애초에 우리가 정보를 재구성하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정보가 더 나은 의사결정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죠. 위의 사례처럼 말이죠. 주사위를 굴리기 전에, 6이 나온다는 사실만 아는 것보다, 짝수가 나온면 돈을 딸 확률이 높다는 정보까지 알 때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현재를 실제보다 잘 예측했던 것처럼 설명하는 것이며, 현재의 사건 또한,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만들어진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죠.
하지만 분명히 유익한 이 정보 업데이트가, 반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뇌는 10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보를 업데이트 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는 무의식 속에서 업데이트를 완료해두는 것입니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의식하지 않고 이빨을 닦는 것처럼 말이죠. (오늘 아침에 이빨을 몇 시에, 몇 분 닦았는지 기억하시나요?)
그래서 이미 정보가 업데이트가 된 줄도 모르고, 애초에 우리가 그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후확신 편향이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사후 확신 편향은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당신이 주식에 투자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주식이 올라서 100만 원을 벌었다고 가정해보자구요. 당신은 100만 원으로 치킨을 사먹으면서, '내가 오를 줄 알았어' 라고 말할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주식을 투자를 하면서 시장의 흐름이라거나 전세계의 경제적인 기조라거나, 회사가 지니고 있는 기술적인 내용 등과 같은 것들을 나름대로 분석한 이후에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반대로 100만 원을 잃었다면 어떨까요?
돈을 잃은 경우, 당신은 '내가 떨어질 줄 알고 있었는데...' 라고 말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마음 한편으로는 승산이 있어서 투자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지는 대신, 떨어질 줄 알고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라는 변명으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잘되면 내 탓, 못되면 남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사후확신 편향의 덫이라고 부릅니다.
사후확신 편향이 위험한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내린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도록 만들고,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덜 비판적이 되게 만들며, 스스로의 의사결정에 대해 지나치게 과신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취업이나 이직을 준비중이라고 가정해봅시다.
힘들게 자기소개서를 1시간 넘게 공을 들여서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원하는 기업에 자기소개서를 제출한 뒤에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후확신 편향 때문에 당신은 '내가 떨어질 줄 알았어. 애초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자격이 없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당신은 더 나아지기를 선택하는 대신에, 현재 직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당신이 불합격한 이유가, 단순히 당신이 자기소개서를 늦게 제출했기 때문이었다면 어떨까요? 이 정보를 습득했다면, 다음 기회에 다시 도전할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리고 스스로가 못났기 때문이라고 자조적인 비판을 하기 보다는, 더 나은 곳을 향해 성장하는 생산적인 커리어를 쌓지 않을까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후 확신 편향을 인지해야 하며, 이를 인지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후확신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과거는 현재의 관점에서만 질서정연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2) 모든 의사결정은 애초에 불완전한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3) 나는 신이 아니므로, 실제 의사결정을 할 때보다, 행동의 결과를 평가할 때 더 많은 정보를 지닌다.
4) 우리의 뇌는 새로운 정보가 입력될 때마다 기억을 재구성한다.
5) 메모, 녹화 등을 통해서 정보는 객관적으로 기록한다.
이 중 5번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후확신 편향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우리가 실제로 내렸던 의사결정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정보를 기록해두고, 사후에, 그러니까 일이 끝난 후에 우리가 새롭게 재구성한 기억들과 비교·대조·분석을 해보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직장에서도 사후확신 편향 때문에 조직원들끼리, 심하면 고객과의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정말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팀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은, 고객과 미팅을 하거나 통화를 하다가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에는, 구두로 끝내지 말고 반드시 이메일과 같은 서면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라고 강조를 합니다. 왜냐하면 사후확신 편향이라는 말썽꾸러기가 언제든지 우리를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죠.
이번 칼럼에서는 사후 확신 편향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이런 말들을 되뇌입니다.
방금 좌회전 해서 들어갔었어야 하는데...
주식을 미리 팔았어야 하는데...
여기가 아니라, 다른 사이트에서 주문했었어야 하는데...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애초에 모든 결정은 불완전합니다.
우리가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완전함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조금 더 행복한 삶과 커리어를 쌓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애초에 그럴 줄 알고 있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고, 미래에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지속될 경우에는, 놀라운 성공이 아니라, 정말 놀랍도록 비참한 미래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이성을 지닌 인간입니다. 우리의 뇌는 분명히 많은 결함이 있지만, 이성이 있기 때문에 더 나은 방법으로 의사결정의 프로세서를 체계화시킬 수 있고, 더 나은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의사결정력을 현명하게 높일 수 있습니다.
핵심은 우리의 뇌가 똑똑하긴 하지만, 분명히 멍청한 점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p.s. 개인적으로 사후확신 편향을 통해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거의 잘못된 의사결정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서양의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인 랠프 왈도 에머슨의 말처럼 말이죠.
매일 일을 끝내고 잊으라.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분명 실수와 어리석은 짓도 있었겠지만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잊으라. 내일은 새로운 하루이니 잘 그리고 침착하게 시작하라. 당신이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터무니없는 생각에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높은 사기를 가지고 말이다.
p.p.s. 자수성가한 사람들 역시 사후확신 편향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했다는 사후확신 때문에, 자신이 올챙이적 시절과 비슷한 어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어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