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모리슨
달걀, 버터를 팔던 아버지의 재래시장 가판대를 전국적인 슈퍼마켓 체인으로 키운 영국의 ‘슈퍼마켓 왕’ 켄 모리슨 경(卿)이 2017년 2월 1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모리슨은 그래머스쿨(인문계 중등학교)을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대신 시장에서 아버지 윌리엄의 가업을 이었다. 특유의 성실함과 소비자 이해력을 바탕으로 아버지가 물려준 재래시장 가판대를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진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의 성을 딴 유통기업 ‘모리슨즈’는 영국에서 4번째로 큰 슈퍼마켓 체인이다. 2016년 매출액만 163억 1700만 파운드(약 23조 6700억 원)에 달하며 매주 1000만 명 이상의 고객이 모리슨스의 매장을 찾는다.
임직원만 13만 2000명. 런던 증시의 FTSE 100 지수 기업에도 포함돼 있다. 현재 영국 중부의 소도시 브래드포드를 기반으로 영국 전역에 500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1899년 브래드포드의 로손시장에 식료품을 파는 가판대를 열었고 1956년 모리슨 경에게 물려줄 때까지 반세기 이상 시장에서 가판대와 작은 가게를 운영했다.
모리슨은 5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왔다. 첫 업무는 달걀의 흠을 찾는 아버지 곁에서 양초를 들고 있는 것. 모리슨은 6남매 중 막내였지만 외아들이라 군에서 의무복무를 마친 뒤 가게를 물려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은 뒤 차별화를 추구했다. 1958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3개의 계산대를 가진 셀프 서비스 점포를 열었고 1961년에는 옛 영화관에 무료 주차장을 마련하고 자신의 첫 슈퍼마켓을 세웠다.
당시 영국에서 개인의 차량 소유가 늘어나는 추세였고 자가용을 타고 와 장을 보는 사람들도 덩달아 증가했다. 주차장 자체가 고객을 유인하려는 전략이었다.
모리슨은 구체적으로 노동자 계층을 주요 고객으로 설정했다. 이들의 경제력을 고려해 철저하게 ‘비용 최소화’를 추구했다. 그렇다고 해서 품질까지 포기하지도 않았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게 모리슨의 핵심 전략이었다.
그는 자체 도축장까지 운영하면서 원가를 낮췄다. 사계절 채소는 현지에서 매입해 직거래를 했다. 비닐봉지까지 직접 만들었다.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했다. 그 결과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좋은 품질로 제공할 수 있었다. 당연히 고객은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판매는 슈퍼마켓에 재래시장을 접목했다. 매장 내부에 시장처럼 거리를 만들었고 전문성을 갖춘 매장 직원들이 고객과 대화를 나누며 물건을 팔았다. 모리슨즈는 경쟁 유통기업들과 달리 2000명 이상의 식육처리사, 1200명 이상의 수산물 전문가, 2000명 이상의 제빵사를 직접 고용하며 빵집, 정육점, 생선가게 등을 운영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직원들을 대량 선발해야 했고 현재 영국에서 가장 많은 도제제도(apprenticeships)를 운영하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히고 있을 정도다.
직원들은 단골 고객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추천했다. 주부인 고객이 '오늘 저녁에 어떤 요리를 하려고 한다'고 말하면 이에 상응하는 식재료를 제시했다. 당연히 모리슨즈에 대한 신뢰도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원산지에서 채소, 육류 등을 확보하면 12시간 이내에 매장에 도착하도록 만들어 제품의 신선도를 최대한 높였다. 2008년부터는 육류는 100% 영국산만 팔았다. 2010년 영국 내 4대 슈퍼마켓 체인 중 처음으로 자체 브랜드로 계란을 모두 판매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하면, 모리슨즈는 직원들이 현지 농장에 직접 찾아 가서 원산지를 확인하고 자신의 시설에서 가공해 전문가들의 조언을 덧붙여 고객에게 파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모리슨즈는 이런 방법을 경쟁력 확보, 고객 의견 청취, 현지화,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 단순화 및 처리 속도 향상, 핵심 매장 강화 등 6대 전략으로 소개하고 있다.
모리슨즈는 2000년까지 잉글랜드 북부에 100개 이상의 슈퍼마켓을 열었다. 모리슨은 말년(70대 초반)에 커다란 승부수를 띄운다. 2004년 자신의 회사 보다 덩치가 2배 이상 큰 슈퍼마켓 체인 ‘세이프웨이’를 33억 파운드(약 4조7000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 세이프웨이는 479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세이프웨이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웹스터는 모리스에게 회사를 인수하라고 설득했다. 웹스터는 모리슨이 세이프웨이를 인수하면 모리스의 회사 규모가 2배 이상 커지고 지역 중심의 슈퍼마켓이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세이프웨이 인수는 모리스에게 큰 시련을 안겨줬다. 세이프웨이의 외형은 컸지만 내실은 좋지 않았다. 유능한 인재들은 이미 회사를 빠져 나간 상태였다. 게다가 서로 다른 전산망, 배송 시스템 등을 가진 이질적인 두 회사의 통합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통합기업인 모리슨의 실적은 하락했고 주주와 투자자들은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주기를 원했다. 모리슨은 2006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 회장을 맡으며 2선으로 퇴진했다. 2008년에는 회장 자리에서도 내려왔다. 이후 모리슨은 안정을 되찾았다.
모리슨은 자신의 눈과 통찰력을 믿는 감각적인 경영인이었다. 수치와 프레젠테이션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에게 배운 육감적인 ‘상인의 기술’을 활용했다. 그의 전략은 항상 상식에 기반을 뒀다. 철저하게 ‘소비자 지향적’이었다.
5펜스짜리 쇼핑백을 팔 때도 소비자들의 재사용 여부를 따져 예상 판매량을 추정했다. 노동자 계층 소비자들이 저렴한 쇼핑백이라도 여러 번 재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는 유통 재벌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소탈하고 검소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며 서민적인 감각을 지켰다.
모리슨은 현장과 디테일을 강조했다. 예고 없이 여러 지점들을 방문했다. 지점에서 식료품들의 포장 상태, 신선도 등을 일일이 검사했다. 현장 직원들의 말을 경청했고 임원 보다는 현장 계산대 직원을 더 채용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2001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고 모리슨즈재단을 세워 사회공헌에도 기여했다.
80대 노객인 모리슨은 최근까지도 회사 경영에 큰 관심을 보였다. 금요일이면 현재 모리슨의 CEO인 데이비드 포츠와 함께 구내식당에서 흰살 생선튀김에 감자튀김을 곁들인 ‘피시 앤 칩스’를 먹으며 회사 운영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고 한다.
포츠는 “경영은 모리스의 가슴에 매우 가까이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모리슨의 가족들은 현재 유통기업 모리슨즈의 주식 10% 정도를 가지고 있는 대주주다.
이유종 동아일보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