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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종 Jul 07. 2017

힙합 일렉트로니카 새 역사 쓴
‘시계 수리공’

카케하시 이쿠타로

혁신적인 ‘드럼 머신(드럼 소리를 내는 전자 악기)’을 개발해 힙합, 일렉트로니카, 댄스, 리듬 앤 블루스(R&B)등 현대 대중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카케하시 이쿠타로(梯郁 太郞). 일본의 전자악기 제조기업 '롤랜드'의 창업주인 카케하시가 2017년 4월 1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대중음악인들은 작품에서 드럼 소리를 반복적으로 사용할 때가 많다. 이 때문에 1930년대부터 러시아 음향 물리학자 레온 테레민 등이 자동으로 연주하는 드럼 머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음악인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큰 도움을 준 드럼 머신은 흔하지 않았다. 롤랜드가 1980년 개발한 드림머신 ‘TR-808’부터 비로소 '이 제품이 아니면 음악을 하기 어렵다'라는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사실 TR-808은 시판 초창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며 찬밥 신세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휘트니 휴스턴, 마돈나 등 유명 가수들이 TR-808을 사용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초 미국 남부에서 시작된 힙합 장르 중 하나인 트랩 음악(Trap music)은 TR-808의 극저음 베이스 드럼이 없으면 만들기 어려울 정도다. 


기존 드럼머신은 설정된 리듬을 단순하게 재생했다. 반면 TR-808은 직접 리듬과 사운드를 조작할 수 있어 이후 음악을 쉽고 다양하게 제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IBM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 매킨토시, 콤팩트디스크, 모토로라의 최초 소비자 휴대전화 ‘DynaTAC 8000X’ 등과 함께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친 전자기기로도 분류된다.

  

TR-808의 성공으로 카케하시가 세운 롤랜드는 디지털 피아노, 신시사이저, 키보드, 전자 기타 등 종합 전자악기 제조기업으로 성장했다. 임직원만 3000명에 달한다.



디지털 악기 제조기업 롤랜드의 창업주 카케하시 이타쿠로 (출처:롤랜드)



문외한(門外漢)도 다룰 수 있는 직관적인 악기


1930년 2월 일본의 항구도시 오사카에서 태어난 카케하시는 어릴 때 부모가 결핵에 걸려 숨졌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에서 어렵게 성장했다. 기술학교에 다녔던 그는 2차 세계대전 말 군함을 만들던 오사카의 히타치조선소에서 견습 학생으로 일했다. 선반 사용, 용접, 조립 등 직접 기계를 만들어 보면서 제조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전쟁 막바지 미군의 폭격으로 오사카의 집이 파괴됐다. 카케하시는 거처가 마땅하지 않아서 할머니는 친정이 있는 규슈(九州) 남부로 이사해야 했다. 1946년 그는 오사카현립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서 불합격 처분을 받았다. 

카케하시는 결국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1947년 규슈에 머물려 작은 시계 수리점을 열었다. 이후에는 결핵에 걸려 7년 동안 요양원에서 보내야 했다. 꿈 많은 청년 시절 그는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병마와 싸우며 건강을 지켜야만 했다.

1954년 건강이 호전되자 오사카로 돌아와 라디오, 전자 음악기기 등을 수리하는 가게를 열었다. 그는 라디오를 수리하며 방송을 자주 들었는데,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매료됐다. 그는 단순히 전자제품을 수리하는 데만 몰두하지 않고 새로운 기기를 만들려고 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음악은 물론 라디오 방송마저 심하게 통제했다. 그는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소리만으로도 음악에 매료됐고 악기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1958년 그는 자신의 역량을 모두 모아서 새로운 전자 악기를 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카케하시는 단 한 번도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의 제품 개발은 전문가보다는 일반 대중을 지향했다. 악기의 가격이 비싸지 않고 아마추어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제품 사용이 직관적이며 작고 간단한 전자 악기를 만들려고 했다. 

이런 생각은 훗날 롤랜드의 기업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1959년 카케하시는 49개 조(調, key)를 가지며 하나의 음만 내는 첫 악기를 개발했다. 




현대 대중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롤랜드의 드림머신 TR-808. (출처:위키피디아)


끊임없는 악기 개발



1960년 카케하시는 음향기기를 제작하는 회사인 에이스전기산업을 세우고 전기 드럼을 본격적으로 개발했다. 1964년 손으로 조작하는 전기 드럼 ‘R1 리듬 에이스’를 내놓았다. 이 악기는 같은 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국제 음악박람회(NAMM Show)에도 출품됐다. 하지만 양산하지는 못했다. 

1967년부터 그는 연주자가 따로 필요하지 않고 자동으로 리듬이 연주되는 전기 드럼 등 혁신적인 전자 악기 개발에 매진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백 개의 음악 관련 혁신적인 전자기기를 제작하는 등 음악과 디지털의 만남을 도왔다.

하지만 엔지니어 출신인 카케하시는 기업 경영에는 밝지 못했다. 자신이 세운 첫 기업인 에이스전기산업의 경영권마저 잃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라는 단어를 몰랐다. 지인들에게 “다시 도전하겠다"라며 1972년 새로운 회사인 롤랜드를 세웠고 1980년 마침내 TR-808을 개발했다. 

1973년에는 음향기기 전문 제조기업인 보스를 설립했고 롤랜드에서는 회장, 특임 고문 등을 맡다 2013년 은퇴했다. 이듬해에는 8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자악기 회사인 ATV를 또다시 세웠다. 

그는 기술 표준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영리한 사람이었다. 1970년 대까지 전자악기 제조 기업들은 각기 다른 전자 악기를 개발했다. 문제는 전자 악기들이 서로 호환되지 않아 소비자들은 제품을 사용하는데 애로가 많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국의 엔지니어 데이브 스미스는 1981년 열린 국제 오디오 공학회에서 전 세계적인 범용의 통신 표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카케하시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소니와 파나소닉은 수년에 걸쳐 비디오의 표준 기술을 만들려고 경쟁했다. 그 결과 소니가 경쟁에서 밀렸다"라고 말하며 상생의 방법을 모색했다. 

카케하시는 사실 스미스와는 업계 경쟁자였지만 함께 전자악기와 컴퓨터의 연주 데이터 전송 규격인 ‘미디(MIDI, 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를 개발했다. 이들의 자발적인 공동 노력으로 디지털 음악은 더 발전할 수 있었다.




2002년 2월 미국의 영화 중심지 할리우드 '록 워크'에 새겨진 카케하시 이타쿠로 손바닥 자국과 서명. (출처:위키미디어)


“인건비, 재고 부담 적은 새로운 분야에서 창업하라” 



카케하시는 확고한 창업 철학을 지녔다. 그는 일반 기업과 벤처 기업의 창업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기존 분야에서 기업을 세우는 것을 창업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기업을 시작하는 것은 벤처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벤처 기업이 일반 기업 보다 훨씬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고 봤다.  음악 분야는 벤처 기업에 가깝다고 믿었다. 전자 악기로 음악인들에게 다양한 곡을 만들고 새로운 방식으로 연주하는 등 창의적인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케하시는 도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음악 분야에 매진했다.

여러 벤처 기업을 세운 그는 성공 기업의 요건으로 몇 가지를 꼽았다. 일단 창업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서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기존 분야라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뭔가를 시도한다면 새로운 영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카케하시는 “음악은 양치기들이 가진 ‘팬 파이프(관으로 구성된 전통 악기)’처럼 오래된 분야다. 그러나 지금은 (전자 악기 등의 등장으로) 우주 시대를 개척하는 것만큼 매우 새롭다"라고 말했다. 그는 음악에서 전자 악기를 개발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대신 실무적으로는 인건비 비중이 큰 사업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부가 가치가 높은 분야에서 제품을 특화 시키면 사업에서 성공할 기회가 많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재고가 적은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소프트웨어, 전자악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봤다. 특히 음악은 다른 산업으로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믿었다.  

카케하시의 공로는 널리 인정을 받았다. 미국의 실용음악 명문학교인 버클리음악대학은 그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미국의 영화 중심지인 할리우드 '록 워크'에는 그의 손바닥 자국과 서명이 새겨진 바닥 동판이 설치돼 있다. 

록 워크는 로큰롤을 예술로 승화시킨 음악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설치된 것이다. 여기에는 ‘로큰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 ‘싱어송라이터’ 에릭 클랩튼 등이 흔적을 남겼다. 엔지니어인 카케하시가 현대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이 엘비스 프레슬리, 에릭 클랩튼과 견줄만 하다는 뜻이다. 

이유종 동아일보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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