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르아미 Oct 19. 2023

운명의 기로. 그 시작




여름.


건조한 여름은 그까짓 거! 하고 넘길 수 있지만 한국처럼 습하고 폭염이 난리인 여름은 정말 나에게 쥐약이다. 에어컨 바람에서 벗어난 곳으로 가면 미간이 항상 하이파이브 중이라 외출조차 꺼려진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날은 너무 더웠고, 심지어 매주 돌아오는 주말 출근이었다. 최대한 덜 덥고 간편하게 옷을 입고 나갔고 도착해서 일을 시작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선생님? 어디서 전화 오는 거 아니에요? 내건 아닌데요?”

“어? 그래?”


느긋하게 핸드폰을 들어 올렸는데 발신자가 의외의 인물이었다.



[발신자 : 척척 석사]

언니였다.


“왜?”

"넌 왜 전화를 이제 받아?!"


핸드폰을 넘어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옆 사람마저 깜짝 놀라게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평소 짜증 내는 목소리와 다르게 콧물기가 가득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엄마가 너한테 전화를 여러 번 했다는데 네가 안 받는다잖아!"

“그래서 왜?”

"아빠가 쓰러졌대, 그래서 병원 응급실이래. 빨리 와 당장!"

“어?”



갑자기 온몸에서 덥다고 소리치던 피가 아주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느낌조차 느낄 수 없었다.


“당장 출발할게.”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동료 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근처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병원 응급실이요”


가는 동안 심장은 조금 벌렁거렸지만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에어컨 바람에 차가워진 손을 주무르며 별일 없을 거라고 되뇌며 얼른 병원에 도착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엄마. 나 택시 탔어. 괜찮아?”

"다리가 바들바들 떨려서 쓰러질 것 같아. 너희 아빠 어떡하지?"


엄마는 울진 않았지만 울기 직전이었고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빠는 지금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엄마, 괜찮을 거야. 걱정 마. 나 가고 있으니까 정신 꽉 잡아. 사십 분 정도 걸릴 것 같아.”


차분한 목소리로 엄마를 먼저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창밖의 배경이 휙휙 지나갔지만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점점 더 차분해져 갔다. 응급실 앞에 내려서 내달리듯 안으로 들어갔다. 형부가 앞에 서 계셨다.


“처제 왔어? 아버님 상황이 안 좋으신데 여기서는 지금 수술이 안된다네…”


형부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화가 많이 나있었다. 병원에서는 처음에 수술방을 열어준다고 했다가 갑자기 말을 바꿨다고 한다. 주말인데 수술을 할 신경외과 당직도 없고, 코로나로 인해 음압 병동으로 인력들이 빠져 수술을 못한다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수술을 받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 그놈의 코로나. 결국 그게 우리 가족을 정조준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이젠 뇌출혈 환자의 골든 타임도 아무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엄마…!”

“어 보람아…”


엄마의 모습은 예전 나의 어릴 적 기억의 작은 한 조각 속 그때와 닮아있었다. 바람이 바로 불면 그냥 날아갈 것 같았고, 땅에 주저앉으면 그냥 바닥에 쏟아져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아빠가 아침 먹고 소파에서 일어나다가 쓰러졌는데…”


엄마가 힘없이 바들바들 떠는 목소리로 그 당시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지만 내 귀에는 선명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냥 이 모든 게 내 일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날 진공포장해서 이 상황에 던져놓은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난 택시 안에서보다 더 차분해졌다. 그때 의사가 다가와 아빠가 수술할 수 있는 서울에 있는 3차 병원에 다 연락 중이라고 재차 수술을 해서 살릴 것인지 물었다. 엄마는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의사가 다시 사라지고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아빠하고 서로 약속한 게 있다고. 


서로 죽을병이 걸리면 살리지 말고 그대로 보내주기로. 근데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살려야겠다고. 살 수 있으면 살려야지 어떻게 죽게 두냐고.


그 순간 나는 정말 인간답지 않은, 자식답지 않은 생각을 잠시 해버렸다. '본인의 의사가 그렇다면 가족들 마음대로 수술을 해서 살리는 게 맞는가'에 대한 그런 생각을. 뇌출혈 양이 많아 생존해도 반은 마비가 된 채 평생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데 그게 과연 아빠, 남편이라는 역할을 다 제외한 그냥 그 사람 자체가 원하는 삶인지… 아마 엄마가 의사가 오기 전에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형제들을 포함해 정말 다들 불효자식으로 욕하겠지만) 본인의 의지와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빠는 아픈 상태로 남은 생을 살아가는 것이 본인 자존심에 큰 상처라는 걸, 그리고 그걸 보는 가족들에게 짐이 될 수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빠가 쓰러진 시간은 오전 아홉 시 삼십 분. 뇌출혈 환자 수술을 받고 최대한으로 건강해질 수 있는 골든타임은 응급실에서 전원을 기다리며 이미 지나버렸다. 오후 2시가 넘어 목동 근처로 전원을 할 뻔했지만 우리보다 앞서 그 병원 응급실로 뇌출혈 환자가 들어와서 실패했다. 결국 우린 4시가 훌쩍 넘어 동대문구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할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형부와 엄마는 집으로 보냈고 바통을 터치한 언니가 아연실색해 병원으로 들어왔다. 언니의 얼굴과 눈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빠를 본인 두 눈으로 보면 조금 진정될까 싶어 언니를 안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보호자 대기석으로 나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