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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아미 Oct 19. 2023

살면서 두 번은 안 하고 싶은 경험




아빠는 우리가 길에서 가끔 보는 구급차로 이동할 수 없는 중증 응급환자였다. 특수한 응급 구급차가 와야 했고 타 지역에서 환자를 내려주고 1시간 걸려 도착한 구급차가 응급실 앞에 도착하기 직전 아빠를 이동하기 위한 준비기 시작됐다. (유퀴즈 22.07.12 161회 응급의학과 노명선 교수님 부분을 참고하시면 특수 응급 구급차에 대한 설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사이 응급실 병원비 수납을 하고 아빠가 얼른 나오길 기다렸다. 아빠가 한시라도 빨리 나와 수술을 받아야 우리에게는 콩알만 한 희망이라도 생기 때문에 마음이 점점 급해졌다. 하지만 병원은 병원의 원칙과 처리 순서가 있으니 보호자의 심장이 떨어져 나가도 할 일을 했다. 오히려 재촉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그저 응급실 앞에서 다리만 덜덜 떨며 전전긍긍하는 게 내 최선이었다.


아빠가 수액인지 기계인지 모를 물건과 산소통을 매달고 응급실에서 나왔다. 정말 일순간 정신이 혼미했다. 분명 아침만 해도 나랑 멀쩡하게 인사를 하고 나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의료진과 함께 아빠가 순식간에 구급차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 측에서는 처음에 보호자가 2명까지 탈 수 있다고 했으나 막상 구급차에 타는 보호자는 자리 여건상 한 명뿐이었다. 거기서 내가 타냐 언니가 타냐 정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언니는 그 와중에 왜 두 명이 안 되는지 따져보려고 한 것 같았으나 그냥 얼른 언니 보고 타라고 등을 떠밀었다.




다행히 전원하게 된 병원에 일 겸 보호자로 여러 차례 가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빠르게 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언니는 평소 초행길을 찾아가는 눈이 어두워 거기까지 찾아오려면 길에서 돌아버릴지도 몰라 내가 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언니를 보호자로 앰뷸런스에 태웠다. 차에 시동이 걸리고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는 걸 확인하자마자 난 병원 앞 버스 정류장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병원 앞이라 그런지 택시가 곧잘 보였지만 토요일 그 시간에 탔다가는 길에 콕 박혀 오지도 가지도 못할 수 있기에 가장 빨리 가까운 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는 게 최선이었다.


역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자 그 버스 옆으로 아빠를 태운 거대한 앰뷸런스가 지나갔다. 처음 택시에서부터 언니가 탄 구급차의 문이 닫힐 때까지 참았던 눈물이 순식간에 쏟아졌다. 마스크 안으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슬픔에 절여질 시간도 마음도 없었다. 눈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박박 닦아내며 역에 도착해 지하철을 한대라도 놓치지 않으려 역사 안으로 다시 미친 듯이 뛰어내려 갔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뛰었으면 체력장 1등 했을 텐데 그때는 지금 상황보다 간절하지 않았나 보다.) 이전 역을 떠난 열차가 때마침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터질 것 같은 숨을 겨우 가다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로장생(하트)] -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엄마의 별칭.


“응, 엄마. 아빠 언니랑 출발했어. 보호자는 한 명밖에 못 탄다고 해서 언니 태웠지. 그거 따질 시간이 어딨어? 급한데. 나는 지하철 타고 가려고. 걱정 마. 수술 잘 될 거니까 밥 안 들어가도 물에 말아서 꼭꼭 씹어 먹어. 나도 알아서 챙겨 먹을 거니까 걱정 말고. 병원 도착하면 다시 연락할게. 응, 걱정하지 마.”


엄마는 이 와중에도 점심도 굻고 강북까지 넘어가야 하는 내가 걱정이 되어 꼭 밥 먹어야 한다고 힘들어서 못 버틴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그런 말을 했다.


“수술 들어가면 이제 그건 너희 아빠 운명이야.”


운명. 사전적 의미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라는데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사람에게 이보다 얄팍한 말이 있을까 싶었다. 온몸으로 거부하고 역행하려고 해도 그놈의 운명이 결국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키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아 망할 인생. 정말 녹록지 않다.




지하철 안에서 심호흡을 하며 눈물을 겨우 다 삼켜내고 언니보다 한 발짝 늦게 응급실에 도착했다. 또 여러 가지 검사를 마치고 저녁 일곱 시가 다 된 시각. 의식이 없는 아빠는 머리를 다 밀고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쓰러진 지 10시간 만이었다. 


우리에겐 절망과 후회만이 남았다.


소량의 불만 켜져 있는 어두운 병원 로비에 앉아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언니는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뱉어냈다. 재밌게 본 드라마, 영화, 게임… 마치 여고생들 쉬는 시간에 나누는 대화와 같았다. 아마 눈물 없이 넋을 놔버린 내가 어지간히 안타까웠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시답지 않은 말들 덕분에 최악을 상상하진 않았다.


울렁거리는 하루를 보내는 동안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 듣던 절친이 일을 끝내고 잠시 병원에 들렀다. 본인도 오늘 하루가 고됐을 텐데 여기까지 한걸음에 달려와 줘서 정말 고마웠다. 입고 있던 옷이 어지간히 불편했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옷과 신발을 챙겨 와 나에게 전해줬다.


하얗게 질려버린 내 얼굴을 본 친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울음을 꾹꾹 참는 내 얼굴이 얼마나 가관이었을까. 친구는 그냥 내가 울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이 병원까지 퇴근 후 달려왔을 테니. 하지만 당장 거기서 울기 시작하면 비난의 주체 없이 쌍욕을 하며 내가 땅으로 꺼지든 하늘로 솟구쳐버리든 둘 중 하나는 할 것 같았다. 눈물을 속 안으로 욱여넣으며 친구를 보내고 다시 우리의 억겁 같은 기다림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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